[단독] 비인기 부처 전락한 기재부.."격무 탓 공무원들 서로 안가려해"

윤지원 2021. 1. 2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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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령탑' 기획재정부가 2020년도 신임 5급 공무원들의 부처 지망에서 새만금개발청(전북 군산 소재)과 나란히 '기피 부처 1순위'로 꼽히는 굴욕을 당했다. 과거 최상위권 행정고시 합격자들이 앞다투어 모여들던 영광은 간데 없고, 꼴찌도 들어갈 수 있는 부처가 된 것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90년생 신임 사무관들이 보상없는 격무와 인사 적체, 과열 경쟁이 만성화된 기재부를 철저히 외면한 결과다.

21일 정부에 따르면 제65기 5급 공채 신임사무관들은 지난 19일 부처 별 지망을 마무리했다. 기재부의 빛바랜 영광은 이번 신임 사무관들의 지망률에서 고스란히 확인됐다. 행정고시 주요 직렬인 재경 파트에서 기재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끝까지 '정원 미달 상태'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산자부야 최근 '월성원전 자료삭제'건도 벌어졌고, 정권 바뀔 때마다 부침이 심한 곳이라 수습 사무관들 사이에서 '자칫 정권 바뀌면 감옥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던 것 아니겠나"라면서도 "다만 경제총괄부처인 기재부가 재경 직렬에서조차 이렇게까지 인기가 추락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요 직렬인 일반행정 파트에서도 기재부의 열세는 반복됐다 . 전북 군산에 위치해 지망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새만금개발청과 나란히 정원 미달에 이르는 수모를 겪었다. 과거 신임 사무관 배치 때 수석을 대부분 독점해왔던 기재부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에 따르면 일반행정 직렬 최상위 5명 가운데 단 한명도 기재부를 선택하지 않았고, 재경 직렬 최상위 5명 가운데 1명만이 기재부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입 사무관들 사이에서 기재부 지망을 기피하는 현상은 최근 들어 추세화된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무관은 "기재부는 거의 갈아 넣어지는 식으로 노동강도가 심한데 이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인사적체가 심해 승진하려면 부처 바깥을 돌면서 하세월을 보내야 하는 구조다"며 "예산총괄과에 들어가야 '성골'로 인정받을 수 있는 등 내부 경쟁도 피가 튀기니 90년생들이 왜 구태여 가려하겠나"고 지적했다.

기재부 역시 이 같은 조직 내부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대책 마련엔 손 놓고 있는 실정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사실 기재부 인기가 저조해진 지는 꽤 됐다. 쉽게 말하면 요즘 행시 합격자들 1등도 여전히 기재부를 오지만, 꼴등도 기재부를 오게 되는 구조"라고 짚었다. 이어 "예전 같으면 재경·일반행정 합격자 가운데 1등부터 30등까지 쭈르륵 기재부로 들어오는 구조였다. 대부분 '장·차관 야망'을 품에 안고 들어와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격무를 버텨나갔다"며 "그러나 요즘 기재부에 들어오는 어린 세대의 사무관들 절반은 본인의 부처 지망에서 미끄러져 억지로 들어오는 구조다보니, 조직 내부의 열악함에 대해 불만도 더욱 커지는 구조다"고 설명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이 같은 고충을 수렴하기 위해 '중참 사무관과 대화'를 가졌지만, '열심히 하라'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으며 원성만 더 키웠다는 후문이다.

'기재부 공무원들은 국회의원도 발 아래로 본다'는 말이 공연했을 정도로 과거 기재부의 위세는 대단했다. 관가 요직을 독식하며 '기피아(기재부+마피아)'라고 불리던 화양연화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경제수장인 홍 부총리가 정치권에서 수차례 난타를 당하는 등 사실상 여권에 끌려가는 입장이 되며, 공무원들 사이에서 기재부의 위세도 이전 같지 않다는 평가다.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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