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CCTV보는데 수천만~1억? 경찰 부실수사 땐 어쩌나

김주영 기자 2021. 1. 21. 16: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울산 남구 한 국공립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3살 아이에게 12분 만에 물 7컵을 마시게 하고, 친구들이 먹고 남은 잔반까지 먹이는 등 학대한 혐의가 학부모 문제제기로 뒤늦게 재수사로 드러나자, 부모가 보육기관 CCTV를 쉽게 볼 수 있도록 절차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울산 남구 국공립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부실수사와 관련해 피해 아동 부모가 지난 20일 올린 국민청원 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울산 남구 국공립어린이집 학대 피해 아동의 부모는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린 “울산 남구 국공립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을 부실수사한 담당경찰관 파면과 울산 남부경찰서장의 공개사과를 요구합니다”란 글에서 경찰의 부실수사와 CCTV열람 문제를 지적했다.

피해 아동 부모의 변호인과 경찰에 따르면 울산 남부경찰서는 재수사를 통해 지난해 3월 검찰에 송치한 23건의 학대 정황 외에 약 60건의 정황을 추가로 확인해 총 83개 학대 정황에 대해 지난 18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초기 수사팀에 대해서는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감사를 진행중이다.

피해 아동 부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아동학대 사실 신고 전 어린이집에 CCTV영상 열람을 요청했으나, 원장은 자신이 정한 날짜만 보라고 권유했다. 이를 거부한 피해아동 부모가 다른 날짜의 CCTV영상까지 보던 중, 학대 장면이 나오자 원장은 모니터를 끄고 자물쇠로 상영장치를 잠궈버렸다.

학대의심 신고후 경찰서를 찾은 피해 아동 부모에게 경찰은 CCTV영상을 보려면 영상에 나오는 가해 교사를 비롯한 아동 등 전체 동의를 받거나 모자이크를 해야한다고 안내했다. 비용은 3000만원선이었다. 영상 동의와 비용지불 둘 다 하지 못했던 학부모는 어렵게 법원에 CCTV열람을 신청한 뒤에야 재판장 허가를 받아 1년 만에 문제의 CCTV를 볼 수 있었다.

현행 정보공개보호법상 학부모들이 보육기관 CCTV 영상을 보려면 학부모가 등장인물 전체의 동의를 받거나 모자이크 비용을 내야한다. 모자이크 비용은 시간당 50~60만원 선으로 2~3개월치를 보려면 수천만 원~1억원까지 비용을 내야한다.

지난해 9월 부산 기장경찰서에서도 기장군 한 국공립어린이집에서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으나, 어린이집에선 경찰에 교사와 아동 연락처 제공을 거부해 동의를 받을 수 없었다. 이에 경찰은 고소인인 아동 보호자에게 CCTV 열람 비용으로 1억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한다고 안내했다. 경찰 관계자는 “모자이크 업체에 문의했더니 당시 32일치, 174기가 용량 전체를 모자이크하려면 그 정도 비용이 나온다고해 안내했고, 비용이 비싸 결국 아동 보호자가 CCTV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영유아보육법의 경우 아동학대가 의심될 경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선 CCTV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법적으로 이들 기관이 CCTV영상을 보유해야하는 기간은 90일치에 달해 학부모가 보육기관에서 영상을 열람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학대사실이 알려질까봐 보육기관이 열람을 거부할 수도 있다.

경찰도 학부모들이 영상을 요청할 때마다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도 영상을 압수한 뒤 부모에 복사해 넘겨주면 간단하지만 정보공개보호법상 교사와 다른 아동의 사생활 침해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다른 한 경찰 관계자도 “영유아보육법에서 영상을 열람할 수 있게 한 것처럼 아동학대 의심상황 등 특수한 경우에는 열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학부모가 처한 현실을 고려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현미 울산육아종합지원센터장은 “2015년 영유아보호법 개정 후 보육기관의 CCTV설치는 의무화돼 있지만, 학부모들은 선생님, 원과의 관계를 고려해 CCTV요청도 힘들고 동의는 더더욱 받기가 힘들다”고 했다. 노 센터장은 “정부차원에서 모자이크 등 비식별조치를 할 수 있는 인력이나 예산을 지원하거나, 그런 일을 하는 기관을 별도로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하면 학부모들이 보육기관을 믿고 맡길 수 있어 또 하나의 저출산 대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