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사 극적 합의했지만..'낮은 택배비' 갈등 불씨 그대로

최동현 기자 2021. 1. 2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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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요금제', '백마진 금지' 제안했지만 후순위 밀려
"실적 허덕이는데 비용 어디서 나오나"..택배사 '끙끙'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 수석부의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 택배종사자 과로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1차 합의문 발표식에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포옹하고 있다. 2021.1.21/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총파업 위기까지 내몰렸던 택배노조와 택배업체간 교섭이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요금 현실화' 내용이 빠져 있어 또다른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배업계가 사회적 합의기구에 택배요금 현실화 방안으로 '최소요금제'를 제안했지만, 별다른 동의를 받지 못하고 '미완'(未完) 상태로 합의가 마무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CJ대한통운·한진·롯데택배 등 택배업체는 당장 분류작업 책임과 인건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추가 비용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은 합의안에서 빠진 셈이다.

국내 택배업체의 연평균 영업이익률은 2~3%에 불과한 상황이다. 분류인력 투입이나 수수료 지급 등을 위한 실탄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합의안이 지켜지기 힘든 구조라는 지적이다.

◇"최소요금제 제안했지만 이해하는 주체 없었다"

21일 물류업계에 따르면 한국통합물류협회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사회적 합의기구) 논의 과정에서 '최소요금제'를 제안했지만 최종 합의안으로 확정하지 못했다.

'최소요금제'는 택배요금 하한선을 2000~2500원으로 정하는 가격 하한제다. 협회는 택배업체가 노동계 요구사항인 분류작업 책임소재와 분류작업지원인력 투입을 전담하기 위해서는 현재 1400~1800원 수준인 온라인쇼핑몰 택배요금에 '가격 하한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소요금제는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별다른 동의를 얻지 못하고 '후속 논의 사항'으로 남았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2월 '택배 거래구조 개선방안'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연구 결과가 나오면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회적 합의기구에는 한국온라인쇼핑몰협회, 한국TV홈쇼핑협회, 소비자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했지만 최소요금제에 대한 필요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주체는 없었다"고 말했다.

협회는 '택배비 백마진'(리베이트)도 법적으로 금지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역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최종 합의문에는 '택배비·택배요금 거래구조 개선'이라는 포괄적인 명제만 제시됐다.

택배업체는 당장 Δ분류작업 전담 Δ분류지원인력 6000명 투입 Δ택배기사 근무시간 주 60시간 제한 Δ심야배송 금지 등 합의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대책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은 얻어내지 못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택배비 현실화나 거래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가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당장 수천억원의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런 내용은 확정하지 못했다"며 "사회적 합의가 지속적으로 이행될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택배비 현실화' 빠진 최종 합의…"현실성 있나"

택배업계의 '비용 걱정'을 엄살로 치부하기에는 택배산업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 택배업계는 잇단 노동자 과로사 문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업계 전체가 만성적인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CJ대한통운·한진·롯데택배 등 국내 택배회사의 영업이익률은 평균 2~3%로 업계 최저 수준이다. CJ대한통운은 지난 2019년 10조4151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3072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2.9%에 그쳤다.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도 각각 2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도 영업이익은 4.4%, 0.7%만 남겼다.

특히 한진은 지난해 '언택트 특수'로 영업이익 1110억원 을 달성해 전년 대비 22.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률은 5%에 머물렀다. 한진은 올해 목표 매출을 2조3575억원으로 설정했지만 영업이익은 5억원만 높여 잡았다. 업계가 호황을 누리는 것처럼 보여도 영업이익을 확 높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택배산업이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이유는 '낮은 택배비' 때문이다. 지난해 택배 단가는 박스당 평균 2269원으로 해외 선진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페덱스는 8달러90센트(1만88원), UPS는 8달러60센트(9750원)로 최대 4.4배 비싸다. 일본 야마토 익스프레스 택배비도 676엔(7353원)으로 3배 넘는 가격을 줘야 한다.

택배비를 '최저입찰제'로 정하는 현행 제도와 '택배비 백마진' 관행도 골칫거리다. 경쟁 택배사보다 더 낮은 금액을 제시해야 배송 계약을 따는 구조여서 '출혈경쟁'이 불가피하다. 그나마 낮은 택배비 일부를 유통업체가 '물류비' 명목으로 가져간다.

결국 '택배비'와 '과로'는 어느 하나만 해결할 수 없는 양면의 문제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택배노동자 과로방지 대책만 우선 시행하고, 택배비 현실화는 뒷전으로 미룬 사회적 합의가 '반쪽짜리 합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분류작업이나 작업환경 개선을 당장 시행하면서 비용문제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있다"며 "노사 상호가 기대하는 대로 합의를 지속하려면 거래구조 개선과 택배요금 현실화가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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