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채경의 랑데부] '우주적 격차'를 내다보는 일

한겨레 2021. 1. 2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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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채경의 랑데부]
누군가는 지적한다. 인류가 지구의 자연을 망가뜨린 것도 모자라 이제 달도, 화성도, 소행성도 하나씩 망쳐버릴 거라고. 그동안 쏘아 올렸던 인공위성과 그 잔해가 온 하늘을 뒤덮어 망원경으로 별 보기도 힘들어질 거라고.

심채경ㅣ천문학자

국제천문연맹(IAU)은 3년에 한 번씩 총회를 연다. 전 세계 다양한 분야의 천문학자들이 모여 그간의 연구 내용을 발표하기도 하고, 새로운 정책을 토의하는 자리다. 명왕성을 행성이 아니라 왜소행성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도 2006년 국제천문연맹 총회에서 결정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다. 당초 8월에 열기로 계획했으니 아직 시간이 반년 이상 남았지만, 여름 무렵 팬데믹이 종식되리라는 전망은 나오지 않는다. 전염병이 조금 사그라든다고 해도, 비행기를 타고 타국을 방문하는 일은, 수천 명의 외국 학자들이 한반도에 몰려드는 일은 지양할 수밖에 없을 것임이 자명하다.

팬데믹 초기에는 대부분의 국제 학술대회가 줄줄이 취소되었다. 학자들이 하나둘씩 비대면 온라인 회의에 익숙해져갈 즈음에는 제한된 수의 사람만 참석한 현장을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반년쯤 지나면서 학술단체마다 온라인으로 학회를 진행할 수 있는 방송·통신 장비를 갖추게 되었고, 전면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학술대회의 비율이 높아졌다.

그것이 참 좋았다. 미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 비행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니 참석 비용도 저렴했다. 세계 곳곳의 작은 기관에서 진행하는 세미나도 마음만 먹으면 실컷 들을 수 있었다. 학회 참석을 위해 따로 출장을 가지 않으니 낮에는 한국 시간으로 일을 하고 밤에는 자다 말고 일어나 미국이나 유럽 시간으로 진행되는 학회 발표를 듣는 바람에 또 다른 종류의 피로가 오긴 했지만.

국제천문연맹 총회는 1년 후로 연기되었다. 전면 온라인으로 진행하거나 대면·비대면 병행의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국제천문연맹의 총회에는 각자의 학술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안건을 논하는 자리이기에, 코로나19 상황이 더 좋아지기를 기대하며 1년 연기하는 안이 채택되었다.

연기하는 안을 지지한 여러 의견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국제천문연맹의 기본 정신을 언급하는 목소리다. 국가마다 팬데믹에 대처하는 방식도 다를뿐더러 그런 각자의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인 울타리가 되는지도 크게 다르다. 한국의 전업 연구자인 나는 이부자리에 앉은 채로 노트북만 켜면 오밤중에도 국외의 온라인 학회에 접속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과 기존의 작업 환경을 영위하기가 대단히 곤란한 연구자들도 있을 것이다. 팬데믹에 대응 속도가 뒤떨어진 국가의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은 국제천문연맹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점을 누군가가 짚어냈다. 따라서 온라인으로 학회를 제날짜에 강행하기보다는 1년 미뤄보자는 것이었다. 학회 개최 연기 안내문이 그렇게 멋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다시 달로, 그리고 화성으로, 더 먼 우주로 떠나려는 계획, 지구 밖 천체에서 광물을 캐다 팔거나 우주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돈이 된다는 계산이 등장하는 요즘이다. 민간 업체들이 우주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행정절차를 도와주겠다는 회사까지 들어서고 있다. 누군가는 지적한다. 인류가 지구의 자연을 망가뜨린 것도 모자라 이제 달도, 화성도, 소행성도 하나씩 망쳐버릴 거라고. 그동안 쏘아 올렸던 인공위성과 그 잔해가 온 하늘을 뒤덮어 망원경으로 별 보기도 힘들어질 거라고. 잘나가는 나라들이 화성을 지구처럼 바꿔버리는 동안 우주 기술이 부족한 나라는 ‘뉴 스페이스’라 불리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도, 그 상업화의 열매를 함께 따 먹지도 못하고 완전히 소외될 것이라고.

그런 우려는 사실일지 모른다. 팬데믹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 내가 한밤중에 일어나 학회에 참석하는 이유도 ‘우주 선진국’에서 어떤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천문학은 그런 모순을 안고 있다. 누구나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볼 수는 있지만, 좋은 연구를 하려면 엄청나게 비싼 시설이 필요하다. 심지어는 망원경을 우주에 띄워 두거나, 태양계 저 멀리 명왕성까지 탐사선을 보내 사진을 찍어 와야 한다. 팬데믹 이전에도 모두가 평등한 입장이었던 것은 아니며, 학회를 연기하면서 개발도상국 운운하는 것은 그저 우아해 보이는 몇 마디 문구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우주는 전 인류가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임을, 기계적으로라도 모두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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