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땐 가족이라도 현행범 체포 가능

입력 2021. 1. 2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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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술에 취해 공격적인 모습이었다. 집안의 물건을 던지고 몸을 밀치며 나가라고 했다. 위협을 느낀 K씨는 112에 신고했다. 경찰이 도착하기까지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시간은 지독히도 길게 느껴졌다. 경찰 서너 명이 도착하자 남편과 자신을 격리시켰다. 누군가는 남편을 데리고 가서 얘기를 했고, 다른 경찰과 사복 차림의 여성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K씨와 함께했다. 순간, 두려움에 떨던 현실이 서러워 눈물이 났다. 

협박을 가했던 남편은 경찰들에게 큰 소리를 치며 난동을 부렸다. 경찰들은 친정엄마가 올 때까지 K씨와 함께하다 집을 나서는 길에 동행해 주었다. 친정엄마가 K씨 집에 잠시 사위와 머무르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경찰은 술에 취한 남편과 함께 집에 머물 수 없다고 했다. K씨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해 물었다. 경찰은 남편을 정식으로 신고하려면 남편과 경찰서로 가서 정식으로 조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고 K씨는 여성가족과에서 걸려온 안부 전화를 받았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

1366에 도움을 청한 여성들의 가족폭력 상담 현황.(출처=통계청)


경찰은 현장에서 폭력이 재발할 위험이 무척 높다고 판단할 경우, 가해자를 격리하는 ‘임시조치’를 검찰에 신청할 수 있다. 그 과정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가정폭력처벌법에 따르면 경찰의 임시조치 신청을 받은 검찰이 이를 법원에 청구하고 법원이 결정을 내리는 3단계 절차를 거쳐야 한다. 법원이 임시조치 결정을 내리면 가정폭력 가해자는 즉시 퇴거해야 하고, 피해자의 집과 직장 근처 100m 이내에 접근해서도 안 된다. 휴대폰 등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역시 금지된다. 

문제는 시간이다. 현재의 3단계 절차로는 임시조치를 발동하기까지 열흘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 와중에 피해자들이 또 다른 폭력 피해를 당할 수 있었다. 피해자를 보호하려 한다면 절차를 간소화하고, 가해자가 조치를 위반했을 때 공권력의 물리적 제재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에 개정된 가정폭력처벌법이 1월 21일부터 시행된다. 폭력을 가한 가해자를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게 됐다.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수사에 돌입할 때 형사소송법에 따른 현형범 체포가 가능해진 거다. 또한, 가정폭력처벌법 적용 대상 범죄 유형이 확대되며, 경찰의 초동 대응 기반도 한층 강화된다.

가정폭력 가해자들의 구속률과 분리율 통계.(출처=경찰청)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이제부터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것과 동시에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를 위반할 경우, 징역형도 가능해진다. 가정폭력범이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 위반 시 과태료가 아닌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 또는 구류에 처하도록 제재가 강화된다.

이에 따라, 경찰의 임시조치 및 피해자 보호명령 적용 범위도 확대된다. 가정폭력법상 가정폭력범죄 정의에 주거침입, 퇴거불응, 특수손괴,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범죄가 추가됐다. 경찰은 이제 가정폭력범죄에 대해 더욱 엄중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실효성도 높아진다. 기존 접근금지는 피해자의 주거·직장 등 특정 장소에 대해서만 가능했던 반면, 접근금지 임시조치 범위에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이 추가되면서 특정 상대에 대한 접근금지 조치도 이루어진다. 

통계에 따르면 실제 경찰에 가정폭력을 신고해도 격리나 접근금지 등 긴급임시조치가 취해진 건은 100건 가운데 0.4건 뿐이다. 또, 2015년부터 2018년 6월까지 검거된 가정폭력사범 16만4020명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1632명에 불과했다. 반면, 가정폭력 재범률은 같은 기간 4.1%에서 8.9%로 2배 이상 늘었다. 또 가정폭력사범의 기소율은 8.5%(2016년 기준) 뿐이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대신에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해 주는 제도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2019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주요 내용.(출처=여성가족부)


‘정인이 사건’으로 경찰에 대한 불신이 늘고 있는 지금, 자치경찰제가 도입됐다. 아울러 지금은 코로나로 외출하지 못해 집에 머무는 가족들의 갈등이 깊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가정폭력과 부부싸움은 분명히 다르다. 부부싸움이라면 서로 편하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갈등이 싸움으로 이어져 힘의 균형이 깨진다면 가정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제 가정폭력은 더 이상 집안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문제이며 국가의 공권력이 개입해야 하는 문제다. 

가정폭력은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범죄다. 피해자들이 더 두려운 이유다. 때리고도 당당한 그들을 이젠 공권력으로 막아야 할 때다. 경찰의 높아진 위상이 약자를 위한 강화된 범죄자 단속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 맞고 사는 결혼 이주 여성이 적지 않다. 경찰은 이러한 약자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최초의 공권력이다.

정책기자단|박은영eypark1942@naver.com
때로는 가벼움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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