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성하는 모순의 파편

천다민 2021. 1. 2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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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몸은 좋은 대우를 받는다. 그 외에 다른 몸은 망연자실하여, 버려진 채로, 자기혐오로 가득 차 살아간다. 양쪽 다 도둑맞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단 한 단어로 포획되지 않는 여성 혹은 남성, 그 중간에 있는 존재에 대한 것이다.

그의 정체성 역시 손수건에 수놓을 수 있는 명확한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일라이 클레어는 '불완전'하다고 여겨지기에 조롱당하는 몸,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근처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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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몸은 좋은 대우를 받는다. 그 외에 다른 몸은 망연자실하여, 버려진 채로, 자기혐오로 가득 차 살아간다. 양쪽 다 도둑맞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단 한 단어로 포획되지 않는 여성 혹은 남성, 그 중간에 있는 존재에 대한 것이다. 장애인, 젠더퀴어, 페미니스트, 친족 성폭력 생존자, 노동운동가, 시인, 에세이 작가, 시골 출신. 서로 크기도 모양도 다른 정체성은 삐뚤빼뚤한 지도를 그린다. 작가인 일라이 클레어는 뇌병변 장애를 타고난 젠더퀴어다. 자기혐오와 자긍심 사이의 존재, 둘 다이기도 하고 둘 다 아니기도 한. 이 책은 그 복잡한 면을 짚는 데 지면을 할애한다. 뭉뚱그리지 않고 원래 모순적일 수밖에 없는 것들을 끌어안을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작가는 고향에서 받은 고통을 여태 생생히 느끼면서도 그곳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자신을 매섭게 대한 곳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곳이 주었던 일종의 안온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고향을 떠나와 퀴어 공동체에 소속됨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긍지를 찾게 되었지만, 동시에 태어난 곳에 대한 증오 섞인 애정을 버리지 않는 것. 작가는 둘을 썩 훌륭하게 병행한다.

그의 세계는 혐오 혹은 사랑, 두 가지로 정확히 이분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섞여 있다. 검은색과 흰색이 섞여 회색 같기도 하고, 더 진한 검정 같기도 한 색들이 파도처럼 섞여드는 표지의 빛깔처럼이나 복잡하다. 그의 정체성 역시 손수건에 수놓을 수 있는 명확한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대단히 ‘퀴어(이상한)’하다. 일라이 클레어는 ‘불완전’하다고 여겨지기에 조롱당하는 몸,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근처를 맴돈다. 어떻게 자긍심을 찾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심지어는 자신을 강간하고 그 일을 방조한 고향에 대해서조차도. 그는 자신이 무엇을 도둑맞았는지 똑바로 응시한다. ‘정상’이라는 언어로 설명되는 불편하지 않은 몸들 외에 무수한 몸들이 있다고 소리친다. ‘비정상’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발버둥치는 여러 몸들이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몸 자체보다, 몸을 둘러싸고 있음으로써 그 몸을 피로하게 하고, 좌절하게 하고, 곪게 하는 언어들을 차가운 눈으로 포착해낸다.

추천사를 쓴 아우로라 레빈스 모랄레스는 말한다. 어떤 예술은 종소리 같아서, 자신을 통하여 진동하고 자신을 화음으로 채운다고. 그에 응답하는 파편들을 휘갈겨 쓰게 만든다고. 말하자면 이 책은 강력한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일라이 클레어는 처절할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지도를 내보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이 누구이든 당신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모순의 파편을 바라볼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천다민 (유튜브 ‘채널수북’ 운영자·뉴닉 에디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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