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각성 끝에 흘리는 눈물

조형근 2021. 1. 21. 14:1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글로 세상을 배우다 보면 서로 적당히 거리두기가 된다.

읽으며 아프고 분노한 내가 읽은 뒤에 변함없이 일상을 이을 수 있다.

다른 이도 내 글을 읽으며 그럴 것이다.

내 감정은 조금씩 뒤틀리다가 이윽고 어떻게든 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불편해진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글로 세상을 배우다 보면 서로 적당히 거리두기가 된다. 읽으며 아프고 분노한 내가 읽은 뒤에 변함없이 일상을 이을 수 있다. 다른 이도 내 글을 읽으며 그럴 것이다. 홍은전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이 안전한 거리가 종종 무너진다.

저자 홍은전은 작가, 인권활동 기록가다. 그 전에는 오랫동안 운동단체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 노릇을 했다. 그의 글에 등장하는 이들은 장애인, 선감학원·형제복지원 같은 시설 탈출자, 대추리에서 쫓겨난 농민, 집 빼앗긴 철거민, 세월호 유가족 같은 이들이다. 싸운 이야기, 죽어간 이야기, 죽은 이를 애도한 이야기, 애도할 수 있기 위해 싸운 이야기, 죽기 위해 준비한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숨도 못 쉴 것처럼 막막한 상황들 한가운데서, 결국 어떻게든 어떻게 해보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여기까지 소개하면 어떤 독자들은 이 책이 얼마나 슬픈 일들로 가득 차 있을지 벌써 걱정이 되면서 눈시울이 조금 시큰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의 책에 난만한, 이 가엾고 처연한 이야기들 앞에서 우리는 아무런 감정의 조미료 없이도 한껏 울게 된다. 그 뒤부터는 조금 다르다. 그렇게 흐르는 내 눈물이 얼마나 안전한 감정의 분비물인지 깨닫게 된다. 내 감정은 조금씩 뒤틀리다가 이윽고 어떻게든 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불편해진다. 그의 글은 바로 그런 불편한 각성의 자리로 독자를 함께 데려간다. 아니, 거기 서서 함께 운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오랜 시간 절박한 이들과 함께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그 스스로 당사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절망의 이편에서 손을 내미는 역할을 했을 뿐임을 깨달을 때가 있다. “‘손 벌리는 자’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 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꿈도 꾸지 못할 자유를 아무 노력 없이 누리면서도 일상의 작은 불편조차 장애인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그들을 격리하고 가두는 엄청난 권력을 행사한다. 인구의 10%가 장애인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일상적으로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인식할 수조차 없다.”

너무 슬퍼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책의 마지막은 그가 새롭게 만난 고양이라는 동물 존재들에 대한, 아니 동물로서의 우리 삶에 대한 신선한 자극들로 눈부시다. 그녀가 두 달 치 원고료를 모아 70만원을 주고 캣타워를 샀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많이 반성했다. 나도 그녀처럼 병들어 버려진 고양이를 만나 올해부터 인생이 바뀌었다. 아직 캣타워는 못 사줬다.

조형근 (사회학자) editor@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www.sisain.co.kr) - [ 시사IN 구독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