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 역차별은 없다, 성차별은 있다

한겨레 2021. 1. 2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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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윤 비온 뒤 무지개]

1일 ‘채용성차별공동행동’이 서울 마포구 <문화방송> 본사 앞에서 채용 성차별 관행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채용성차별공동행동’ 제공

한채윤ㅣ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역차별”로 검색하면 1월20일 현재 1864건이 나온다. 역차별이란 단어가 들어간 청원의 수다. ‘역차별’을 정말 써야 할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역차별은 그리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억울한 감정을 표현할 때 쓰는 경우가 더 흔하다. 남자만 군대 가는 건 역차별 아닌가요, 경찰 채용시험에서 팔굽혀펴기를 남자만 더 많이 하는 건 역차별 아닌가요, 여성가족부만 있는 건 역차별 아닌가요 등의 읍소들이 넘친다. 새해엔 뭔가 좀 새로워야 하지 않을까. 역차별 논쟁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보자.

성평등 강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등학생들도 역차별을 호소한다고 한다. 가장 많은 사례가 남자한테만 무거운 짐 옮기게 하는 것. 그런데 이것이 역차별일까? 역차별 정의부터 알아보자. 국어사전에 의하면 “부당한 차별을 받는 쪽을 보호하기 위하여 마련한 제도나 장치가 너무 강하여 오히려 반대편이 차별을 받음”이다. 역차별이 성립하려면 우선 학칙에 여학생에겐 1㎏ 이상의 물건을 들게 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고, 이 때문에 남학생들은 물건을 옮기느라 다른 걸 할 기회를 놓치는 상황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학칙을 가진 곳은 없다. 그럼 뭘까? 바로 성차별이다. 교사의 머릿속에 있는 성별 역할 고정관념이 작동한 결과이니까. 이 문제는 교사가 성별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합리적으로 역할을 맡기도록 인식을 바꾸어야 해결된다.

소방관과 경찰 채용시험에서 팔굽혀펴기 등 체력검사 기준이 여자에게 유리하다며 말이 많았다. 이 논쟁에서 간과하는 지점이 있다. 먼저, 필기시험과 체력시험의 비중 차이다. 소방관은 필기 75%, 체력 15%, 경찰은 필기 50%, 체력 25% 그리고 나머지는 면접 점수다. 필기시험의 성적은 통상 여성 응시자가 훨씬 높다. 소방관 2018년 상반기 시험 경우, 남성의 합격선은 68.35점이었으나 여성은 80.48점이었다. 이 정도 점수 차라면 설사 체력에서 점수가 부족해도 여성 합격자가 훨씬 더 많아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여성과 남성 채용 목표치가 분리 적용되므로 경쟁은 애초 남녀 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성을 적게 뽑아, 소방관은 평균 5% 정도이고, 경찰은 10%에서 최근에야 20%대로 올랐다. 이렇다 보니 소방관 경우 2018년 하반기 채용에서 남성은 39.8 대 1, 여성은 무려 150.8 대 1이라는 놀라운 경쟁률이 나왔다. 2020년 3월에 발표된 경찰 공채 경쟁률 자료에 의하면 남성은 12.24 대 1, 여성은 23.29 대 1이었다. 다시 말해, 여성이 남성의 합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여성이 남성들이 기울이는 노력에 비해 더 쉽게 시험을 통과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역차별이 개입될 여지란 없다.

역차별이 되려면 남성의 체력시험 만점 기준이 높은 이유가 여성을 보호하려다 보니 벌어진 일이어야 할 텐데 실제론 남성의 기준이 먼저 정해졌다. 이후 여성 기준을 잡을 때 남성보다는 약하다고 전제하고 남성 기준의 60~80%로 정한 것이다. 이런 불합리를 깨닫고 경찰청은 2023년부터 남녀 분리모집을 폐지하고 남녀 통합으로 진행하며, 성별 구분 없는 체력 기준도 올해 안에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도에 경찰의 성별 분리모집은 헌법의 평등권 위배라고 폐지를 권고한 것이 이제야 받아들여졌다.

남자만 군대 가는 것이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던 이들이 관심을 가질 부분은 오히려 그동안 경찰공무원 시험을 치려면 군을 제대했거나 면제를 받아야 한다는 군필 제한 규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만 18살부터 응시 자격은 있으나 군대부터 가야만 시험을 칠 수 있었다. 이 불합리한 규정이 2020년 하반기 채용부터 사라졌다. 남성들 사이에서 불평등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 새해를 맞자. 역차별은 없다. 성차별은 있다. 허상의 역차별에 매달리지 말고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자.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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