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의 후회에서 탄생한 '장희빈 법'의 정체

2021. 1. 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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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비로 산다는 건 아주 큰 결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들만 후계자가 되는 왕위세습제 속에서 아들을 반드시 출산해야 했고, 여기다 왕이 들여놓을 수 있는 최대 9명의 후궁까지 포용할 인내심을 갖춰야했습니다.

인현왕후는 후사 문제와 후궁 문제에 모두 시달렸던 왕비였습니다. 천연두 때문에 이른 나이에 사망한 정실부인 인경왕후의 뒤를 이어 숙종의 왕비가 됐지만 7년간 후사를 보지 못해 애를 먹었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후궁으로 들어온 장희빈이 덜컥 숙종의 아들을 출산합니다.

‘역사 속 라이벌 열전 – 인현왕후과 장희빈’ 편

[인현왕후와 장희빈] 영상 바로가기

1화 : https://youtu.be/-MIksZg_Zj8

2화 : https://youtu.be/fbJBPMGU7Ko

3화 : https://youtu.be/0ipfiuT6RY4

조선사 권위자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가 진행하는 정통파 역사 이야기 ‘역사 속 라이벌 열전 – 인현왕후과 장희빈’ 편 제2화에서는 두 여인의 인생 역전극이 빠르게 전개됩니다.

더 이상 후사를 기다리기 힘들었던 숙종은 당시 주된 정치세력이었던 서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으로 후궁인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에 이어 세자로 책봉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우암 송시열이 책봉 반대 상소를 꾸준히 올리다 유배당하고 결국 사사당하죠.

숙종의 아들을 낳아 세자로 만든 장희빈은 결국 왕비가 됩니다. 반면 인현왕후는 폐위되어 친정집인 안국동 감고당에서 쓸쓸한 나날을 보내게 되죠. 폐위된 왕비의 회한이 서린 감고당 길을 영상에서 만나보세요. 인현왕후 폐위와 장희빈 즉위 배후에 있는 역사적 사실을 짚어가며 감고당 길을 걸어가면 감회가 새로울 겁니다.

이후 두 여인의 운명은 5년 만에 다시 한 번 바뀝니다. 숙종은 왜 마음을 돌이켰을까요. 이때 제정된 ‘장희빈 법’은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 영상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역사 속 라이벌 열전’ 시리즈는 조선일보사와 ㈜LG가 진행해 온 ‘청소년학교, 찾아가는 북 콘서트’의 후속편입니다. 시리즈는 총 6개 주제로 구성됐으며 그 중 세 번째 주제인 ‘인현왕후와 장희빈 편’ 1,2,3화가 조선일보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시청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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