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오현도 돌아왔다 [발리볼 비키니]
맞다. 여오현(43)도 돌아왔다.
2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2020~2021 V리그 남자부 경기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선수는 지난해 3월 1일 KB손해보험전 이후 325일 만에 코트로 돌아온 문성민(35)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실에 들어온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 역시 “문성민이 돌아왔다”는 한마디로 총평을 대신했다.
현대캐피탈은 이날 1세트를 먼저 내준 채 경기를 시작했고 2세트서도 6-13으로 끌려가자 최 감독은 코트라는 물 안에 문성민이라는 매기를 풀어 넣으면서 선수들에게 책임감 있게 물장구를 치라는 사인을 보냈다. (최 감독은 2016년 2월 25일 OK저축은행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코트는 물이고 너희는 물고기이니 마음껏 물장구를 치고 오라”고 말했다.)
이 상황에서 코트를 밟은 건 ‘문캡’ 문성민 혼자가 아니었다. ‘영원한 리베로’ 여오현 플레잉 코치 역시 바로 다음 랠리 때 코트에 들어섰다. 여 코치는 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상대 서브 17개를 받는 동안 실패 없이 리시브 정확 7개를 기록했다(리시브 효율 47.1%). 이날 상대 서브를 10개 이상 받은 선수 중 이보다 리시브 성적이 높은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시즌 전체를 봐도 그렇다. 이번 시즌 여 코치는 상대 서브를 207개(리시브 점유율 11.7%) 받으면서 리시브 정확 109번, 리시브 실패 11번을 기록했다(리시브 효율 47.3%). 리시브 점유율이 10% 이상인 선수 가운데 리시브 효율이 제일 높은 선수가 바로 여 코치다.
단, 리빌딩 차원에서 ‘루키 리베로’ 박경민(22)에게 ‘경험치’를 먹여주는 동안 출전 시간이 줄었기 때문에 서브 리시브 순위표에서는 여 코치 이름을 찾을 수가 없다. (서브 리시브 순위에 이름을 올리려면 점유율 15% 이상이어야 한다.) 여 코치가 상대 서브를 10개 이상 받은 건 지난해 12월 18일 대한항공전 이후 이날이 33일 만에 처음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코트 위에서 만난 여 코치는 “경기에 많이 못 나가다 보니 살찐 것 좀 보라”고 없는 뱃살을 억지로 잡는 시늉을 한 뒤 “벤치를 지키는 게 체력적으로 더 힘들다. (박)경민이가 워낙 잘해주고 있어서 많이 출전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든 경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웨이트 트레이닝 위주로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경민을 제2의 여오현이라고 평가해도 좋겠냐’는 물음에는 “나보다 낫다. 경민이 나이 때 나는 그만큼 못했다. 경험이 쌓이면 더 좋은 선수가 될 거다. 붙박이 국가대표 리베로가 될 수 있는 선수”라면서 “나이 차이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내 경험을 하나라도 더 얻어갔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어 “다른 후배들도 오늘 부진했다고 기죽을 필요 없다. 더 당돌한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 그게 선배들이 원하는 모습”이라면서 “선배들도 항상 든든하게 뒤를 받칠 수 있도록 열심히 연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시즌 여오현은 리그 평균 리시브 효율(35.6%)보다 33% 높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개인 기록을 리그 평균으로 나눈 ‘리시브 효율 +’ 133은 프로 선수 생활 17년 동안 네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순간순간 ‘나이는 못 속인다’ 싶을 때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전성기 못잖은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누구나 40대가 되면 경험하는 것처럼 여 코치 또한 ‘한 해, 한 해 다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미 느끼고 또 느꼈을 터. 어떤 의미에서 여 코치가 코트 위에서 외치는 ‘파이팅’ 소리는 자신의 40대를 향한 응원가인지도 모른다. 여 코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 응원가를 오래오래 들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여오현이 돌아왔다’로 시작하는 글도 오래오래 쓸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전국에 계신 모든 40대, 특히 자신이 40대가 됐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계실 1982년생 여러분도 모두 파이팅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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