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품귀 현상에 TV 공장도 멈추나..업계 "생산 중단 우려" 비상

박진우 기자 2021. 1. 21. 10: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車·모바일 이어 디스플레이 구동 칩도 부족
공급문제 상반기 안으로 안 풀릴 듯
전 세계 반도체 공장 100% 가동해도…"수요 못 따라가"
시설 투자 늘리는 반도체 업계…공급과잉 우려도

삼성디스플레이 LCD 공장.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최근 자동차용 반도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이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가운데, 모니터와 TV 등에 사용되는 디스플레이 드라이버 집적회로(DDI·Display Driver IC)도 품귀현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대면 흐름 속에서 각종 전자제품·서버 등에 쓰이는 반도체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탓이다. 본격적인 반도체 대란(大亂)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제작하는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부족한 DDI로 최대 이익을 거두기 위해 수익성이 높은 모니터와 대형 TV 패널 위주로 생산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 DDI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상당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펜트업(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는) 수요에 따라 호황을 누리고 있는 TV·모니터 시장이 반도체 공급 차질로 자칫 꺾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반도체 생산 업계는 케파(생산능력·Capacity)를 100%까지 끌어올리고 있으나, 폭발적인 수요에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수요 증가와 공급 부족으로 반도체 가격을 이미 올렸거나, 인상을 검토 중인 업체들도 있다. 공급을 해결하기 위한 시설 관련 투자는 올해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수요 증가가 ‘코로나19에 따른 과잉수요’라는 분석도 있어 신중한 태도 역시 요구되는 중이다.

◇ "DDI 부족 때문에" 모니터·대형 TV 출하량 급증…업계 "생산 멈출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65인치 이상 TV 출하량은 전년(2019년)보다 23.4%, 70인치 이상 TV 출하량은 47.8% 크게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전체 TV 출하량은 전년과 비교해 0.3% 줄은 2억1700만대에 그쳤다. 시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대형 TV만 판매가 많이 늘어난 것이다.

LG디스플레이 파주 공장 LCD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유리기판을 검사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제공

이는 TV·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이 DDI 공급 부족에 따라 수익성이 높은 제품군으로 생산 전략을 수정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공급이 원활치 않은 상황에서 굳이 수익성이 낮은 제품에 DDI를 투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트렌드포스는 "DDI 공급 부족으로 지난해 4분기 예정된 TV 출하 일정이 뒤로 밀렸다"며 "(같은 이유로) 모니터용 패널은 올 상반기 병목현상을 빚어 출하 차질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올해 TV 판매량도 대형 위주로 성장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트렌드포스는 글로벌 주요 TV 제조사의 65인치 TV 출하량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중형 TV를 만드는 2·3등급 TV 제조사들은 여력 부족과 DDI 공급 차질로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가전·디스플레이 업체 구매 부서 등은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현재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 반도체 공급이 중단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에는 구동에 필요한 DDI뿐 아니라, 전력을 제어하는 집적회로(PMIC·Power Management IC) 등도 중요한데, 핵심 반도체 전 분야에서 곧 반도체 재고가 떨어질 조짐이 여기저기서 목격된다는 것이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모든 제품군에서 반도체를 원하는 만큼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쇼티지(품귀현상) 상황이 상당히 지속될 것으로 보여 관련 전략을 짜고 있으나, 공급 증대 외에는 마땅한 돌파구가 없어 생산 차질이 우려된다"고 했다.

◇LCD 패널 가격 상승 부추기는 반도체 품귀현상…"DDI 문제 상반기 안으로 안 끝나"

DDI 등 모니터와 TV에 사용되는 반도체 부족 문제는 주로 LCD 패널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의 패널 가격 상승도 이런 흐름 속에서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LCD 패널 가격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2018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수익성이 나빠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시장 철수’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디스플레이 수요가 증가하면서 지난해 12월까지 5분기 연속 가격이 올라 2017년 4분기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요청으로 사업 철수 시점을 뒤로 미뤘다.

8K 초고해상도 대형 디스플레이에 장착되는 DDI ‘S6CT93P’. /삼성전자 제공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백라이트모듈을 설치하지 않은 UHD(초고해상도·Ultra High Definition) 55인치 패널 가격은 지난해 2분기 111달러에서 4분기 178달러로 상승했고, 65인치 경우에도 175달러에서 227달러로 높아졌다.

LCD DDI 공급 문제는 올 상반기까지 이어져 당분간 LCD 패널 가격 상승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지난달 일본전기초자(NEG·Nippon Electric Glass)의 다카쓰키 사업장 정전으로 패널용 유리 공급이 차질을 빚은 점도 패널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이에 대해 "지속되는 DDI 공급부족은 올해 디스플레이 패널 가격 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패널 제조업체는 공급망과 재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 자동차도, 모바일도 "반도체 좀 달라" 아우성… 생산 풀가동해도 수요 못 따라가

코로나19 이후 수요 감소로 자동차 생산량이 줄자, 반도체 업계는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을 타 분야로 전환해 생산해 오고 있었다. 그러다 자동차 수요가 증가하면서 필요한 자동차 반도체를 원하는 만큼 수급받지 못하고 있다. 폴크스바겐, 도요타, 포드 등에서 생산 일부 중단 또는 지연 현상이 나타나는 중이다.

삼성전자 플래그십 모바일 AP 엑시노스 2100. /삼성전자 유튜브 캡처

모바일 AP 역시 반도체 공급이 더디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경우 최근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사업부가 발표한 모바일 AP ‘엑시노스 2100’의 생산량을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엑시노스 2100가 만들어지는 7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미세공정에 IBM, 엔비디아, 퀄컴 등 대형 고객사 주문이 밀리면서 물량 배정에 어려움을 겪은 탓이다. 삼성전자는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 S21에 엑시노스 2100을 장착할 예정인데, 이같은 공급 차질은 초반 판매 확대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파운드리 글로벌 1위인 대만 TSMC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애플 모바일 AP, 퀄컴 모뎀칩, AMD CPU·GPU 등을 생산하고 있는 TSMC는 수요 증가로 새 고객사 유치는커녕, 기존 고객사에 납품하는 반도체를 공급하기도 어렵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이에 따라 반도체 가격 상승도 예고된다. TSMC는 최근 대형 고객사에 적용했던 ‘3% 할인’ 정책을 종료했고, 대만 UMC, VIS도 파운드리 가격을 10% 이상 올렸다.

펩리스나 후공정 업체도 덩달아 가격 인상을 예정하고 있다. 자동차용 반도체를 만드는 네덜란드 NXP는 자동차 업체를 대상으로 가격 인상을 곧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대만 패키징 업체 ASE는 지난 4분기 가격을 20% 올렸고, 올 1분기에도 가격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공급 부족에 투자 늘려… ‘과잉수요’ 지적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곳도

TSMC는 올해 파운드리 설비투자(CAPEX)에 우리 돈으로 3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미세공정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삼성전자도 투자를 늘린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반도체 설비에만 38조원을 쏟아부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28조9000억원에서 크게 늘린 것이다. 이 가운데 파운드리 등 시스템(비메모리) 분야 설비투자에 10조원 이상을 쓸 것으로 보인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및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전반적으로 공급 부족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시점에서 대만의 TSMC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도 설비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반도체 관련 장비 소재 부품사들의 실적 모멘텀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SK하이닉스의 충북 청주공장 전경.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의 경우 파운드리에선 아직 걸음마 단계이나, 파운드리 사업 강화를 목적으로 분사한 SK하이닉스시스템IC의 약진이 예상된다.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지난해 말 중국 장쑤 우시의 파운드리 공장 가동을 시작했는데, 이 공장은 이미지센서, DDI, PMIC 등의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200㎜(8인치) 웨이퍼 아날로그 반도체가 주력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200㎜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는 충북 청주 M8공장도 모두 우시 공장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1000여개에 달하는 중국 팹리스 공략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파운드리 세계 10위 DB하이텍도 200㎜ 웨이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회사다. 현재 풀 케파(가동률 100%)를 유지 중이나, 향후 투자 계획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이 없다. 작년 11월 공장 증설 검토 얘기가 흘러나왔는데, 회사 측은 "어떠한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파운드리 공장 증설에는 조 단위의 비용이 필요해 투자 감행이 쉽지 않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막대한 설비 투자로 생산을 늘려놓게 되면 코로나19 종식 이후 오히려 ‘과잉공급’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DB하이텍이 선뜻 투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역시 같은 것으로 본다.

반면 코로나19와 관계없이 반도체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세계반도체시장통제기구(WSTS)는 올해 반도체 시장 규모를 전년대비 8.4% 성장한 4694억300만달러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2018년 기록한 사상 최대치(4687억달러)보다 많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 시설 투자를 결정하기도 어려운 이유는 반도체 수요 증가가 일시적인 건인지, 지속적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시장과 여러 경제상황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해야 하지만, 투자 적기를 놓치게 될 경우의 반도체 호황에서의 리스크도 상당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큰 것"이라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