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흉보다 더 중요한 건 생각과 실천이다

한겨레 2021. 1. 2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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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 서재 문을 열고 들어선다.

밤새 자기 공간을 유지하고 있던 사물들이 내가 들이닥치자 움직이기 시작한다.

불쑥 밀고 들어오는 존재에게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방안 사물들은 자신이 누리던 공간을 조금씩 양보하려 움찔거린다.

나 역시 나를 감지한 사물들의 소곤거리는 속삭임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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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비에스> 티브이의 <물어보살마하살> 갈무리

눈을 떠 서재 문을 열고 들어선다. 밤새 자기 공간을 유지하고 있던 사물들이 내가 들이닥치자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존재하기 위해 나의 부피만큼의 공간을 사방으로 밀어낸다. 불쑥 밀고 들어오는 존재에게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방안 사물들은 자신이 누리던 공간을 조금씩 양보하려 움찔거린다. 그렇게 사물들과 공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오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생물도 오감이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다. 나를 감지하고 반응하는 사물들의 느낌을 시시각각 나도 감지하기 때문이다. 별들이 뿌리는 우주의 속삭임이며 저녁노을이 남기고 간 아련한 그리움을 또렷하게 감지한다. 나 역시 나를 감지한 사물들의 소곤거리는 속삭임을 감지한다.

몸이 아프다. 허리부터 허벅지를 타고 장딴지를 거쳐 발목에 이르는 길이 아프다. 아침 6시부터 책상에 앉아 밤중까지 모니터 보고 키보드를 매만지는 일을 여러 날 거듭하다가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예리하고 뜨거운 통증이 다리를 타고 흘렀다. 병원에 들렀더니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어 그렇단다. 자주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몸에 고집을 부렸던 탓이다. 어리석게 한 가지 모양으로 꼼짝하지 못하도록 움켜쥐고 있었던 까닭이다. 몸에 고집을 부리면 탈이 나는가 보다. 한 시간에 한번쯤은 일어나 몸을 움직여 근육을 풀어주어야 한다. 평소 건강함을 자부했던 허리와 다리가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건강하냐 못 하냐가 아니라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중요하단 걸 깨닫는다.

<주역>의 해석방법론 중에 ‘길흉회린’(吉凶悔吝)이 있다. 여기서 ‘회’(悔)는 돌이킴이고 ‘린’(吝)은 고집부림이다. 돌이킴을 위해서는 사고와 행동이 유연해야 한다. 고집부림은 한 가지에 집착하는 견고함이라는 의미이다. 아무리 좋은 상황도 고집부리면 나쁜 상황으로 바뀌게 되고, 나쁜 상황도 유연하게 대처하면 좋은 상황으로 변모한다는 것을 뜻한다.

대개 사람들은 길흉에 몰두한다. 올해 내게 좋은 상황이 펼쳐질지 아니면 나쁜 상황이 펼쳐질지에만 온통 관심을 집중한다. 공자는 길흉에 전착하지 말고 회린에 집중하라고 충고한다. 다가오는 상황의 길흉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닥쳐오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할 것인가를 마음 다지는 일이다.

생물은 물론이고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만물은 집착하기에 존재한다. 단단히 집착하지 않으면 흐트러지고 만다. 태양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태양이 행성들을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한다. 원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원자핵이 전자를 견고하게 잡고 있어야 한다. 잡은 손을 놓아버리면 행성과 전자는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그 존재는 소멸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한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그 존재 역시 망한다. 그래서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인 자기 궤도 안에서 쉬지 않고 열심히 움직인다. 제 궤도를 지키며 운동하므로 움직임은 파동이 되고 일정한 패턴을 형성한다. 견고하게 붙잡고 있으면서 동시에 쉼 없이 움직여야 하는 모순 속에서 모든 존재는 존재하고 있다. 결국 존재는 모순인가 보다.

이정배 목사(원주 한살림교회 담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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