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父 충격 받으라고.." 8살 딸 숨지게 한 母의 범행 이유
넉넉지 않지만 가족 부양위해 최선 다하던 '딸바보' 父
출생신고 계속 압박했지만 母 백씨가 계속 거부
父지인 "백씨, 딸 영어유치원 보내겠다고..의심 못해"
"딸 소원에 함께 지방간다" 했다가 결국 시신이 된 부녀
'인천 8세 친딸 살해 사건'.
친모 백모(44)씨에게 딸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실을 접하고, 딸의 친부 A(46)씨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A씨는 지난 15일 투신 직전 동생 B씨에게 '딸을 혼자 보낼 수 없다, 미안하다'는 글을 남겼다. 20일, 기자를 만나 형의 죽음에 대해 털어놓는 B씨의 얼굴에는 슬픔보다는 분노가 차갑게 서려 있었다.
자주 만나 살갑게 대하지는 못했지만 B씨는 또래보다 키가 빨리 자라는 조카를 위해 철마다 새 옷을 챙겼다. 그런 소중한 아이에게 모진 범죄를 저지른 친모의 범행 동기는 "딸을 죽이면 A가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고 했다.
백씨가 경찰에 이같이 진술했다는 말을 들은 B씨의 마음은 무너졌다. "그 얘기를 듣고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요" B씨의 말이다.
◇'딸바보' 아빠···출생신고 알아봤지만 母반대로 번번이 실패
동생 B씨에 따르면, A씨는 7~8년 전부터 택배 대리점을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게 가족들을 부양했다. 사업상 부침도 있었지만 생활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2~3년 전부터는 상황이 악화됐다. A씨는 가족을 위해 다시 택배 배달원이 됐다고 한다.
A씨의 오랜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C씨는 A씨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다.
"직장에서 모두가 알 정도로 전형적인 '딸바보'였어요. 택배 일이 정말 시간이 많이 없고 바쁜데, 그 와중에도 딸과 영상 통화를 빼먹지 않을 정도로 아꼈습니다. '가장 큰 삶의 낙이 일요일에 딸을 데리고 돈까스를 먹고 월미도에 가서 놀이기구를 태워주는 것'이라면서 '날씨도 추워지고 코로나도 유행해서 어디 갈지 고민된다'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딸을 무척 아끼던 아빠는, 8살이 되도록 출생신고도 못한 딸이 학교라도 갈 수 있도록 백방으로 알아봤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백씨는 사실혼 관계인 A씨와 지난 2013년 딸을 낳았지만, 법적으로 이혼 절차를 밟지 않은 남편이 있었다. 현행법상 딸의 출생신고는 백씨와 그의 '법적 남편' 앞으로 우선 이뤄져야 했다. 백씨의 노력 없이 친부가 홀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었다.
B씨는 "내가 조카의 출생신고가 안돼 있다는 것을 안 것이 다섯 살(2018년) 무렵"이라면서 "형에게 빨리 출생신고를 하라고 재촉했지만 백씨가 안 하겠다고 해 계속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A씨가 경찰서, 법원, 동사무소를 뛰어다니며 문의했지만 방법은 없었다. 학교에 입학했어야 할 나이를 지난 조카를 위해 형제의 고향인 인천의 한 작은 섬에서 아이를 키울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백씨의 고집 앞에 매번 좌절됐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그는 백씨가 끝까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혼인 사실이나 헤어진 사유를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고 말했다.
◇"사교성 좋은 백씨…투자하라며 돈 내줬지만 받지 못해"
백씨의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못했다. 동생인 B씨조차 백씨가 이혼하지 않은 유부녀라는 사실을 지난해에야 알았다.
친구 C씨는 "백씨가 인상도 좋고, (주로 A씨의 지인들에게) 조그만 선물을 주거나 밥값을 '쿨하게' 결제하기도 해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백씨가) '딸에게 유기농만 먹인다'든가, '나중에 영어 유치원을 보낼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백씨의 권유에 따라 투자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건넸다가 받지 못했다는 말도 털어놨다. 하지만 A씨와의 관계 때문에 고소는 하지 못했다. B씨는 "그런 백씨와 헤어지라고 형에게 수차례 권했지만, 출생신고도 돼 있지 않은 딸 때문에 헤어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이를 함께 돌볼 뿐 사이가 좋지 않았던 A씨와 백씨는 지난해 6월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백씨에게 출생신고를 압박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B씨의 설명이다. 딸이 죽음을 당하기 일주일 전, A씨는 지인들에게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셋이 합쳐 지방으로 가려 한다"며 직장까지 그만뒀다.
C씨에 따르면, 이 역시 딸을 위한 결정이었다. 그는 "딸이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것이 소원'이라 했다더라. 그 때문에 다시 한번 합쳐서 지방에 가서 시작해보려고 한 것 같다"고 전했다.
딸이 죽임을 당한 건 그로부터 1주일 가량 지난 이달 8일이었다. 당일 백씨는 A씨에게 딸이 라면을 먹는 동영상을 보내며 태연하게 행동했다. 전날인 7일에는 아이가 수학 시험 100점을 받았다며 사진을 보냈다.
B씨와 주변 지인들에 따르면, 살해 시점을 전후해 백씨는 A씨와의 전화 통화에서 "너 때문에 내가 망가졌다. 딸을 다시는 못 볼 줄 알라"며 신경질적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8일 이후로 A씨는 전화로도 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백씨는 딸을 지방의 고향집에 보냈다고 둘러댔다. A씨는 친분이 있던 택배 사무소 사장에게 "아이가 지방에 있다더라, 백씨는 인천 송도의 한 호텔에 있다고 한다"며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불려진 이름은 있는데…서류에는 '무명녀'로 남아
그 증명서에 더해, B씨가 '모든 일을 책임지겠다'는 확인서까지 쓴 뒤에야 딸을 화장할 수 있었다.
B씨는 "아이가 너무 불쌍하다"며 "앞으로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이날 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백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앞서 백씨는 지난 8일 딸의 호흡을 막아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경찰에 붙잡혔다. 백씨는 딸을 살해한 뒤 며칠이 지나 자해를 시도하다 119에 신고했다. 친부인 A씨는 이 사건이 일어난 뒤 딸의 죽음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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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초롱·김정훈·김승모 기자, 문수진·서영찬 인턴기자] pc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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