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개국 상대 '기후 소송' 10대 남매.."지구는 다시 짓고 싶은 집"

최우리 2021. 1. 2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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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인권]"높은 수준 온실가스 목표 안 내놔
생명권·행복추구권 등 침해" 주장
네덜란드·아일랜드 등 선진국에선
"감축안 구체성 없다" 판결 잇따라
각국 인권위에 진정서도 제출
농어민·노동자·청소년 등 참여
필리핀 인권위는 세계 처음으로
"셸 등 탄소배출기업 책임 다하라"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 내 목을 따끔거리게 만드는 미세먼지를 환경문제로 인식하기 쉽다. 반면 수십년에 걸쳐 일어나는 기후변화는 체감하기 어렵다. 논쟁적일 수밖에 없고 문제의 심각성도 서로 다르게 느낀다.

기후위기가 생명·건강·노동 등 인간답게 살 권리를 앗아간다고 인식한 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법에 호소하는 길을 택했다. 이들은 정부와 기업에 책임을 묻고 있다. 법의 영역에서는 어떤 판단을 할까. 코로나19 이후 인간이 발생시키는 쓰레기 문제에 눈을 뜬 당신, 지구환경을 위해 윤리적 소비와 꼼꼼한 분리수거를 하며 기업과 정부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당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안드레(왼쪽), 소피아 남매가 지난해 9월 유럽인권 법원에 낸 소송자료를 보며 웃고 있다. 남매 제공

“우리가 소송에서 이길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기든 지든 이 세상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우리의 운명이 현재 상태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법원이 이 사건을 긴급사태로 받아들이고 빠르게 응답한 것은 이 사건을 인정하는 의미로 느껴집니다.”(소피아)

“지금 정말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우리 세대가 이 문제에 더 많은 압력을 가할수록 우리 모두 성공할 가능성이 커져요. 이번 소송에서 지더라도 새로운 사건이 쇄도할 거예요.”(안드레)

포르투갈의 소피아(16), 안드레(13) 남매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참여한 유럽 33개국을 상대로 기후소송을 진행 중이다. 남매를 포함한 청소년 6명은 소송 제기 3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인권법원으로부터 ‘원고 자격이 있다’는 결정을 받아 들었다. 법원은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제출받았다. 청소년들의 주장처럼 33개국 정부가 감축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아 원고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는 유럽인권법원 결정이 나온 직후 이들과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드레·소피아 남매. 남매 제공

소피아와 안드레는 소송을 낸 이유로 두려움을 언급했다. 남매는 2018년 폭염으로 기온이 44도까지 오른 리스본에 산다. 나머지 원고 4명은 포르투갈에서 12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산불 피해지역(레이리아) 출신이다.

“지난해 여름 숲에 갔는데, 산불이 나면 우리 모두 갇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2017년 6월과 9월 고온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던 포르투갈 중부 레이리아를 산불이 덮쳤다. 포르투갈 정부도 어쩌지 못하고 유럽연합에 도움을 구해야 했던 최악의 산불로 많은 주민이 숨졌다. 남매는 “어른들은 우리를 안심시켰고, 우리는 그 두려움을 잊으려 했지만 소나무 산불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유령”이라고 했다.

안드레는 “우리가 낸 소송은 젊은이들과 다가올 세대의 권리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 당신이 아닌, 세대 간 연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들은 “세계적 문제를 함께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시민들로부터 소송 비용으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4300여만원을 모금했다. 소피아는 “(이 돈으로) 우리가 재건하고 싶은 집은 지구”라고 했다.

유럽인권법원. 기후미디어허브 제공

기후위기가 현실이 된 이들의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세계 각지에서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기후소송이 진행 중이다.

2019년 기준 세계 9위 온실가스 배출국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국무총리 그린뉴딜 특별보좌관)은 최근 몇년 사이 질문의 변화를 체감한다고 했다. “에너지, 먹거리, 폐기물, 생물다양성 등 모든 환경 이슈가 기후위기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청소년, 직장인, 동네 사람이 늘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우리는 무엇을 실천해야 하느냐고 묻는 시민들이 많았다. 지난해부터는 개인의 실천만으로는 안 되는데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늘고 있다. 정부가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만 실천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시민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기후소송은 지난해 3월 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이 시작했다. 유럽인권법원에 기후소송을 낸 포르투갈의 소피아·안드레 남매 또래 청소년 19명이 원고로 나섰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영향을 받은 청소년 등이 학교 결석 시위를 하다 소송까지 이르렀다. 피청구인은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다.

청소년들은 정부와 국회가 기후변화의 치명적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관련 법령에서 더 높은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부의 미흡한 대응으로 성인이 됐을 때는 기후변화로 인한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며, 이는 생명권,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 국회는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10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이 나왔다. 그린뉴딜 로드맵 등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앞당기는 데는 주저하는 모습이다. 소송을 낸 청소년들과 이들을 대리하는 변호인단은 조만간 헌법재판소에 ‘정부의 노력 없음’에 대한 비판 의견서를 다시 낼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에 600여쪽에 이르는 의견서를 냈다. △헌법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입법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며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2010년 제정됐기 때문에 소송 청구기간(90일)이 지났으며 △해당 법령의 적용을 받는 것은 정부이지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은 소송 당사자 적법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정부는 설령 적법한 소송이라 하더라도 이전 정부에서 전문가 분석과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세부 계획을 수립했으며 파리기후변화협정 당사국으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했다. 또 정부의 감축 노력을 강제한 네덜란드 대법원 판결 등 외국 기후소송은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를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들이 지난해 3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소극적으로 규정한 현행 법령이 청소년의 생명권과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등이 위헌임 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해 10월 한국법률가대회에서 이재희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이 발표한 기후변화와 헌법소송을 주제로 한 논문을 보면 “기후변화에 임박한 현실 위험, 국제공동체에서 합의된 감축 수준을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 여부와 함께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재량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생명과 신체의 안전, 생존과 공동체의 존속에 이르지 못하는 감축량을 설정하는 조치에 대해서는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으로 판단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19년 네덜란드, 지난해엔 아일랜드 대법원에서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안이 미흡하고 구체성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 잇달아 나왔다. 청소년기후행동과 함께 헌법소원을 진행하고 있는 윤세종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유럽은 다른 나라보다 더 앞서 기후위기 대응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나라들의 노력도 불충분하다는 사법적 판단은 다른 국가의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뿐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도 기후위기와 인권의 관계에 대한 판단을 요구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녹색연합·다산인권센터 등이 참여한 기후위기인권그룹은 기후위기로 생명, 건강,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제한받고 있는 농어민, 노동자, 청소년 등의 목소리를 담아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아샤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기후위기는 장기적 문제이고 여러 부처가 연관된 큰 사안이다. 기후위기를 인권 차원에서 다뤄보지 않은 인권위는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인권위 의지의 문제”라고 했다.

지난해 11월26일 오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에서 울산광역시에 사는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가 증언하고 있다. 이날 증언대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최우리 기자

필리핀 인권위원회는 이미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이며, 온실가스를 배출해 돈을 버는 다국적기업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인정했다. 세계 국가인권기구 중 처음이다. 2019년 12월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에서 필리핀 인권위는 셸, 엑손모빌 등 47개 주요 탄소배출 기업들이 기후변화로 인권침해를 당한 필리핀 시민에 대한 법적·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태풍이 이런 결정을 이끌었다. 2013년 11월 슈퍼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덮쳤다. 사망자가 6340여명에 이른다는 현지 집계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피해를 본 18명의 농어민과 그린피스 필리핀 사무소, 필리핀 인권단체 등은 2015년 9월 필리핀 인권위에 탄소배출 기업에 기후위기 피해의 책임을 묻는 진정서를 냈다.

필리핀 인권단체들은 4년에 걸친 공동조사 뒤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는 인권보고서를 내놓았다.

“가난한 지역사회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인해 얼마나 더 가난해질 수 있는지 목격했다. 기업은 사업할 권리가 있지만 우리 또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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