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30년' 그림과 함께 해서 행복합니다

강소현 기자 2021. 1. 21. 04: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피플] 석창우 화백
석창우 화백은 두 팔 없는 의수 화가이자 서예 크로키의 창시자다. /사진=장동규 기자
#.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은 여느 화백과 달랐다. 발로 화선지를 정렬하고 의수 끝 갈고리에 붓을 꽂았다. 한획 한획을 그어가던 그의 얼굴은 붉어졌고 온몸엔 땀이 흘렀다. 몸 전체로부터 힘을 끌어내 화선지에 담아낸다는 느낌이었다. 보고 있던 현장에도 긴장감이 맴돌았다. 약 3분 정도의 퍼포먼스 끝에 화선지엔 사이클링 선수들의 모습이 실감 나게 담겼다. 

석창우 화백은 두 팔 없는 의수 화가이자 서예 크로키의 창시자다. 의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민소매는 스티브 잡스의 검정 목폴라티셔츠만큼이나 그의 시그니처인 코디. 그는 인터뷰 내내 “사고로 팔을 잃은 30년이 더 행복했다”는 믿기 어려운 말을 했다. 실제 흘깃 본 그의 얼굴엔 웃음이 만개했다. 최근 석창우 화백과 만나 그의 사고 이후 30년의 삶을 들어봤다.


2만2000볼트 감전사고… “손 없는 30년, 매일이 보람찼다”



석창우 화백은 공과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이후 전기관리자로 근무하다 시설 점검 중 2만2000볼트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그는 양팔과 발가락 두개를 절단해야 했다. 사고가 발생한 1984년 10월29일 그의 나이는 겨우 29세였다. 

퇴원 이후 전주에서 요양하던 중 4세였던 어린 아들이 그에게 뜬금없이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석창우 화백은 “아들이 태어나고 한달 반 만에 사고를 당했던 터라 못 해 준 게 많았다. 미안한 마음에 온종일 그림을 그려 아이에게 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석창우 화백이 그린 독수리 그림. /사진제공=석창우 화백

하루 종일 그려서 나온 건 겨우 참새 한마리였다. 다만 이전에 그림을 배우지 않았다고 믿기 힘든 수준급 실력이었다. 이 그림을 본 그의 처형은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워보길 제안했다. 하지만 두 팔을 잃은 그가 화백의 길을 선택하기엔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석창우 화백은 “아이들이 굉장히 어렸는데 팔이 없어 아무것도 안 하는 아빠보단 팔 없이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아빠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때부터 재활치료도 그만두고 그림 그리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그림을 가르쳐줄 스승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팔이 없는 그를 선뜻 받아주는 이는 없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사군자’가 떠올랐다. 먹물만 있으면 되는 사군자가 다양한 물감을 필요로 하는 채색화와 비교해 배우기 쉬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석창우 화백은 “우연히 처제가 자신이 다녔던 서예학원의 여태명 선생을 소개해줘 찾아갔다. 그를 찾아가 그림을 배우고 싶다 하니 처음엔 고개를 저었다. 포기할 때까지만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니 그제야 허락해줬다. 두 팔을 잃고도 할 수 있다는 게 생겨 너무 기뻤다”고 당시 벅찼던 심경을 전했다. 

“그림을 그리는 매일이 보람찼다”고 말한 석창우 화백이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끄러운 대나무 소재의 서예 붓을 잡는 것부터가 그에겐 난관이었다. 또 낮은 작업대 앞에 서서 허리를 굽히고 10시간씩 그림을 그리다 보니 몸살을 앓기 일쑤였다. 보다 못한 그의 아내가 “다 죽어가는 사람 살려놨더니 서예 하다가 죽겠다”며 볼멘소리를 내뱉기도 했다고. 그럼에도 의지를 굳히지 않던 그는 매일 10시간씩 3년간 연습한 끝에 보통 이들을 따라갈 수 있게 됐다.

석창우 화백의 퍼포먼스 끝에 화선지엔 사이클링 선수들의 모습이 실감 나게 담겼다. /사진=장동규 기자



거듭된 도전… ‘서예 크로키’ 창시 이어 ‘성경 필사’도



의수 화가로 잘 알려진 석창우 화백은 ‘서예 크로키’의 창시자 이기도 하다. 그는 “현대미술관에서 미술 이론 강의를 듣던 중 한 수강생이 누드 크로키를 같이 그리러 가자고 했다.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누드 크로키 모델을 보면서 이 포즈의 변화를 서예로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연필로 크로키를 시작했다는 그는 “당시 크로키를 가르쳐줬던 김영자 선생님이 연필로 그린 크로키 스케치북이 자기 키만큼 쌓이면 그때 크로키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나서야 석창우 화백은 ‘서예 크로키’를 탄생시켰다.

특히 그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서예 크로키를 많이 그렸다. 초기 정적이고 단순한 포즈만을 그렸던 그는 나가노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였던 미셸 콴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본 이후 동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서예 크로키의 개척자로 우뚝 선 그는 2014년 소치 장애인 겨울올림픽 폐막식 퍼포먼스에서 장애인 올림픽 5개 종목을 서예 크로키로 그려내며 전 세계에 큰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그는 2015년 자신의 환갑을 맞아 시작했던 기독교 성경 필사 작업을 마무리하고 현재 가톨릭 성경을 필사 중이다. 그는 “손 있이 30년, 손 없이 30년을 산 해였다. 내가 60세까지 살 줄 몰랐고 손 없이 살고도 행복하고 즐거웠던 30년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성경 필사 작업에 돌입했다”고 설명했다. 추후 석창우 화백의 성경 필사 작품은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양평 청란교회 뒤 수목장 부지 벽에 걸릴 예정이다. 

지난 60여년 간 인생 앞에 놓인 무수한 허들을 넘어온 그는 인터뷰가 끝난 후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라”고 짧게 말했다. 석창우 화백은 “좋아하지 않는 걸 살면서 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물론 사정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좋아하는 걸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걸 위한 방편으로 삼아 즐거운 삶을 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머니S 주요뉴스]
프로필 사진?… 고은, 앞이 트인 모노키니 '도발'
서현, 고급스런 셋업슈트룩 '8등신 몸매'
정가은, 위장이혼 의혹?… 왜 불거졌나
"뭘 입었지?"… 현아, 뻥뚫린 모노키니 '헉'
한그루 근황 '화제'… 은퇴 후 물오른 미모
박은석, 강아지 상습 파양 의혹… 갑자기 왜?
'이혼' 지연수, 일라이와 재결합 논의한다?
양재진 양재웅 "김희철 걱정돼"… 무슨 일?
소연 근황, 깜찍 섹시 레드슈트룩 '빨간맛'
배성재, 결국 퇴사?… "정리되면 말하겠다"

강소현 기자 kang4201@mt.co.kr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S & money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