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흑백 삼국지, 아들이 색 입혀 다시 냈다

정상혁 기자 2021. 1. 21.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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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故고우영의 아들 고성언씨, 10권 분량 옛 원고에 디지털 채색
"아버지의 수채화 느낌 내려 노력.. 생전 함께하던 시간 자주 떠올라"

아버지의 흑백을 아들이 채색한다. 만화가 고우영(1938~2005)이 남긴 흑백 만화 ‘고우영 삼국지’를 둘째 아들 고성언(52)씨가 색칠해 세상에 내놨다. 40년 시공을 뛰어넘는 부자(父子) 합작이다. “아버지의 작품을 계속 맛보며 일하다 보니 생전 함께하던 시간이 자주 생각난다”고 했다.

20일 만화가 고우영의 차남 고성언씨가 본인의 채색 버전 ‘고우영 삼국지’를 띄운 모니터 앞에서 아버지의 원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아래 사진은 ‘삼국지’ 등장인물을 그린 흑백 원화(왼쪽)와 아들의 채색판. /고운호 기자·고우영

고씨가 완성한 ‘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문학동네)이 10권 분량 종이책으로 최근 출간됐다. 옛 원고를 스캔해 컴퓨터로 옮겨 디지털 채색한 것이다. 고씨는 부친이 남긴 ‘고우영 십팔사략’에도 직접 색을 입혀 2012년 재출간한 적이 있다. “아버지께서 간혹 수채화 물감으로 컬러 작업을 하시곤 했는데, 그때 느낌을 살리려 노력했다. 아버지는 손으로, 나는 컴퓨터로. 내가 뭐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아버지 만화를 조금 더 알릴 수 있도록 옆에서 거드는 정도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흑백 만화 ‘고우영 삼국지’는 기발한 패러디, 서민적이고 현실적인 인물 묘사로 사랑받았다. 완결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검열·삭제 없는 복간본이 2002년 출간돼 지금껏 90만부가 발행됐다. ‘삼국지’ 채색은 2008년 해당 스포츠지(紙)의 제안으로 고씨가 맡아 1년 정도 재연재하다 중단됐다. “2015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 사업에 선정된 이후 개인적으로 몰두해 완성했다”고 했다. “갑자기 컴퓨터가 꺼져 작업해둔 게 다 날아간 적도 있다. 디지털이 완벽한 매체는 아니구나 싶었다. 지금 내가 관리하는 아버지의 원화(原畵)가 꽤 되는데, 종이는 40~50년 넘어도 실물이 남는데 디지털은 어느 순간 한번에 사라질 수도 있으니…. 그러나 옛 독자와 지금 독자를 연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삽화를 전공한 디자이너였다. 2002년 미국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다 부친의 대장암 발병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했다. “수술 끝나고 회복실에 누워 계시는 걸 봤다. 너무 힘겨워하시더라. 혼자 둬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곧장 미국 생활을 정리했다. 곁에 머물며 아버지의 손발을 자처했다. “손님 차(茶) 내오는 것부터, 화실 청소, 식사, 스케줄 관리까지…. 평소 이래라저래라 하셨던 분이 아니다 보니, 가끔은 아버지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옆에 없지만 떠올리곤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올라설 수 있는 순간이 꼭 온다”던 당부다.

부친 별세 후 유작 재출간·기념사업 및 저작권 관리를 담당해온 고씨는 경기도 김포에서 ‘고우영 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서울서 원화 전시도 준비 중이다. “아버지의 삼국지는 매일 아침 출근길 독자들과의 대화였다. 옛날 중국 이야기지만 국내 시대상도 슬쩍슬쩍 담아내,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작가의 소망은 언제나 독자가 웃어주는 것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도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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