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에 숨진 딸의 마지막 말 “사랑해 엄마”

인천/조유미 기자 2021. 1. 21.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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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블랙박스] 끔찍이 딸 아꼈던 친부 극단선택… 빈소에 여덟살 딸 영정과 나란히
/일러스트=박상훈

지난 18일 오후 2시쯤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장례식장. 빈소에는 사흘 전 숨진 최모(46)씨의 영정과 여덟 살 하민양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최씨는 하민양의 친부(親父)다. 지난 8일 최씨와 사실혼 관계인 백모(44)씨는 딸 하민양의 호흡을 막아 숨지게 했다. 최씨와 별거 중이던 백씨는 일주일간 집에 시신을 방치하다 15일 오후 3시 27분이 돼서야 119에 “구급차를 보내 달라. 아이가 죽었다”고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과 구급대는 집에서 매캐한 냄새가 새어 나오자, 잠긴 문 손잡이를 부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눕혀져 있던 아이는 이미 부패가 진행 중이었다. 백씨는 이불과 옷가지를 모아 불을 피운 채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 배에는 자해한 흔적도 있었다. 그는 “내가 아이를 죽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백씨를 병원으로 이송했다가 퇴원과 동시에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백씨와 별거 중이던 친부 최씨는 경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경찰서를 나선 지 2시간 뒤인 15일 밤 10시 30분쯤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의 휴대전화 메모장에는 ‘OO(동생)야! 미안하다! 하민이를 혼자 보낼 수도 없고, 없이 살 자신도 없어’라는 세 문장이 남아 있었다.

◇”딸 혼자 못 보내” 아빠도 극단 선택

친부 최씨는 딸을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 유족은 ‘아이를 혼자 보낼 수 없다’던 최씨의 유언을 들어주려 빈소를 하루 늦게 차렸다. 하민양 시신은 국과수 부검이 끝난 뒤 아빠 곁에 갈 수 있었다.

최씨는 딸과 함께 장례를 치르지 못할 뻔했다. 최씨는 사실혼 관계였던 백씨와 8년 전(2013년) 하민양을 낳았지만, 백씨가 출생 신고를 줄곧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백씨는 10여년 전 남편과 헤어진 뒤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씨와 동거를 했다. 작년 6월 두 사람은 별거했고, 백씨가 하민양을 키워왔다.

출생신고도 되기 전 엄마의 손에 살해된 여덟 살짜리 딸은 생전 ‘사랑해요, 좋아해요, 힘내세요, 엄마, 아빠’라고 적힌 손편지를 남겼다. /최씨 유족 제공

이런 상태에서 사망한 하민양은 ‘무연고 시신’이 됐다. 최씨 유족들은 “아빠와 딸이 함께 장례를 치를 수 있느냐”고 구청에 물었지만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확실하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경찰이 ‘무연고 사망이 아니고 친부가 있다’는 확인서를 써줘, 19일 오후 부녀는 함께 화장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최씨 유족과 동창 등에 따르면, 택배 기사로 일하는 최씨는 주말마다 딸과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택배 차에 딸을 태우고 나들이도 다녔다. 최씨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에는 딸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진첩 속에도 딸과 유원지, 공원 등에서 찍은 사진 수십 장이 남아 있었다.

◇'딸 출생신고' 두고 8년간 갈등

최씨는 딸의 출생신고 문제를 두고 끊임없이 백씨와 갈등을 빚어왔다. 별거를 시작한 이유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니 출생신고를 하자”는 최씨 요구를 백씨가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최씨 유족 측 얘기다. 백씨는 전 남편과 법적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씨의 딸을 낳자, 출생신고를 꺼렸다고 한다. 가족관계등록법상 미혼모는 원하면 바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지만 미혼부는 쉽지가 않다. 최씨는 혼자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주민센터 등에 문의했지만 “친모가 수개월 연락이 되지 않아야 친부 혼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미혼부 법률 지원을 하는 정훈태 변호사는 “미혼부는 원칙적으로 출생신고 권한이 없고, 예외적으로도 친모를 모르는 상태에서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최씨 휴대전화에는 작년 10월 생활비를 달라는 백씨에게 “내일까지 출생신고 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보내라. 등본이 됐든, 주민번호가 됐든. 아이 출생신고 한다고 돈 받아간 게 3번째다. 하라는 출생신고는 뒷전이냐”고 보낸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결국 하민양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살았다. 취학통지서도, 건강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숨지기 전날 ‘사랑해요 엄마 아빠’

백씨는 범행 당일에도 최씨에게 아이 동영상을 보내는 등 태연하게 행동했다. 범행 전날인 지난 7일 밤 11시 22분에는 아이가 100점 받은 산수 시험지를 사진으로 보냈다. 엄마가 낸 덧셈, 뺄셈 문제를 다 맞힌 것이다. 하민양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사랑해요, 좋아해요, 힘내세요. 엄마, 아빠’라 쓰고, 하트 10개를 그린 그림도 보냈다. 메시지를 받은 최씨는 “100점 맞은 것 축하한다고 해!”라고 답을 보냈다. 백씨가 8일 0시 5분에 아이가 라면 먹는 동영상을 보내자, 최씨는 “물 마시라고 해, 짜니까!”라고도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백씨는 이 메시지를 보낸 당일 딸을 살해했다.

백씨는 경찰 조사에서 “생활고로 힘들었다”고 살해 이유를 댔지만, 경찰 관계자는 “(아빠가) 성실했고, 최근까지 백씨에게 생활비와 양육비를 보내준 것 같다”고 했다.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백씨는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었다. 백씨의 휴대전화비, 공과금, 집 월세 모두 최씨가 납부했다.

최씨 카카오톡에는 ‘내일 필요하니 7만원을 보내라’ ‘쌀과 반찬을 사야 한다’ ‘아이 약을 사야 한다’ ‘인터넷 비용과 야쿠르트 값을 달라’ 등의 백씨가 보낸 메시지에, 최씨가 ’10만원 보냈다’ ‘돈 보내겠다’고 답한 내용이 남아 있었다. 유족은 19일 오후 최씨와 하민양을 인천의 한 사찰에 나란히 모셨다. 아이 영정 앞에는 평소 좋아했던 음료수와 칸쵸, 빼빼로가 놓였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20일 살인 혐의를 받는 백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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