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3] 한국은행엔 금이 없다

외환 위기의 기억은 모든 사람에게 스산하다. 그래도 한 가지 훈훈한 기억이 있다. ‘금 모으기 운동’이다. 1997년 말 김영삼 대통령이 외환 위기를 실토하는 특별 담화를 발표하자 온 국민이 발 벗고 나섰다. 집 안의 금붙이를 외국에 팔아서 그 돈으로 부족한 달러를 메꾸자는 시민운동이 시작되었다.
“쌓아두면 먼지가 서 말, 꺼내 팔면 달러가 서 말”이라는 현수막을 걸어두고 은행들이 국제 시세로 금을 매입했다. 은행 창구 앞에는 장롱 속에 두었던 돌반지를 팔려는 시민들이 긴 줄을 섰다. 전국 가구의 23%인 349만명이 그 운동에 동참하여 석 달 동안 금 225톤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금은 효자였다. 금 수출로 들어온 18억달러는 극심한 외환 가뭄 해소에 단비가 되었다. 안 팔린 금은 한국은행이 사들였다. 그때까지 한은이 가진 금은 4톤밖에 없었지만, 한꺼번에 3톤을 늘렸다.
한은은 금 사기보다 보관하기가 더 힘들다. 최고로 안전한 지하 금고를 갖고 있지만, 그것으로도 안심할 수 없다. 한국전쟁 당시 금 0.2톤과 은 16톤을 공산군에게 빼앗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1968년 무장 공비가 서울까지 침투하자 한은은 금괴를 당장 저 멀리 부산으로 옮겼다. 그런데 1983년 부산 다대포에 무장 공비가 나타나자 이번에는 대구로 옮겼다. 외환 위기 직후 금 3톤을 매입할 때는 어디에 보관할지 고민하다가 외국으로 보냈다. 그래서 마음이 놓이자 나머지 금 4톤도 마저 보냈다. 이제 국내에는 한국은행의 금이 전혀 없다.
스위스는 좀 다르다. 금은 국내에 두어야 더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 때문에 국론이 분열될 정도다. 스위스중앙은행이 해외에 맡긴 금 1000톤을 국내로 갖고 오자는 제안을 두고 2014년 국민투표까지 치렀다.
금은 있으나 없으나 고민거리다. 1968년 오늘 무장 공비가 내려왔고, 1998년 오늘은 금 모으기 운동이 최고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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