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담배 묵는 할매
[경향신문]
동네에 담배를 태우는 분들은 멸종 위기의 불을 뿜는 용가리. 굴뚝 연기에 담배 연기도 섞여서 솔솔. 쿠바에 가보면 담배를 문 혁명가들이 벽보를 가득 채우고 있더라. 한번은 아바나 호텔에서 잠깐 봤는데, 텔레비전에 등장한 군복 입은 피델 카스트로가 담배를 태우면서 일장 연설. 금연 시대에 신기할 따름이었다.
담배에 얽힌 농담을 하나 들려주지. 인생이 괴로운 한 사나이가 있었지. 담배 연기를 위로 뿜으면서 “허어. 하늘도 무심하시지. 너무하네 너무해” 푸념. 그러다 담배 연기를 아래로 뿜으며 “귀신은 뭘 하나. 저런 놈들 아직도 안 데려가고”. 담배를 들이마시더니 “에구. 차라리 내가 죽을란다”. 그러다가 담배를 앞으로 훅~ 뿜더니 “아니야. 너 죽고 나 죽자잉”. 상하좌우, 담배로 긋는 성호도 아니고 말이지.
이 동네 저 동네 산촌 답사를 하다보면 동구 밖에서 담배 태우는 할매를 만나고는 한다. 팔순 구순 되시는데도 아랑곳없는 애연가. 살근거리는 담배와 성냥이 몸뻬 안쪽 고물에서 나온다. “와 그랴. 담배 묵는 거 첨 봉가?” 미리 짱당그리며 말문을 막아 세운다. “아뇨. 얼굴이 고우셔가꼬요. 담배나 한 갑 사드릴까요?” “돈이 그라고 많소?” 이렇게 시작되는 만담 쇼도 즐겁다. 추운 날 담배라도 태워 몸을 덥히면 여쪽 말로 저시살이(겨울을 밭에서 죽지 않고 넘겨 이른 봄날 먹을 수 있는 배추 따위)가 되려나. 개울이 얼고 귀때기가 얼고 다음은 콧물이 얼어붙을 차례. 갯가에서 꼬막을 파던 할매가 앉아 피우던 담배 향을 기억한다. 꽃상여 곁에 담배를 문 아들이 꼬막만큼 굵은 눈물을 쏟던 모습도 생생해. 갑자기 옛 생각에 찡해진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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