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역주행하는 한국 민주주의

김환기 입력 2021. 1. 2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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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통령·586 '민주 독재' 논란
법치주의·삼권분립 훼손 심각
"새 민주화운동 벌여야" 지적도
국민통합과 화합의 정치 펼쳐야

“다수결원칙이란 다수에 의한, 다수를 위한 정치체제를 유지시킬 뿐 그 자체로 민주주의는 아니다.” 미국 철학자 폴 우드러프가 저서 ‘최초의 민주주의’에서 한 말이다. 민주주의 정치의 근간인 다수결원칙이 외려 민주주의를 무너트릴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저자는 “소수를 위협하고 배제하며 다수의 권력 아래 종속시키는 정치는 다수에 의한 독재와 다름없다. 이는 자유를 끝장낸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민주 독재’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선출된 권력자가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여러 나라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심판(검찰, 대법원, 헌법재판소) 친정부 인사 심기와 언론·경쟁자 탄압하기, 게임규칙 바꿔 기울어진 운동장 만들기는 민주 독재자들의 통치수법이다.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이 이 길을 걸었다.
김환기 논설위원
낯설지가 않다. 한국 정치에서 봐왔던 익숙한 장면들이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우리법연구회 출신 등 진보성향 인사로 바꿔 사법부를 재편했다.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설치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임명권까지 확보했다. 실패로 끝났지만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도 같은 맥락이다. 이뿐인가. 적폐청산 깃발을 흔들며 전 정권과 보수 야당 인사들을 사법처리하고 공영방송 간부들을 친정부 인사로 교체했다. 공영방송이 정권 홍위병 역할을 잘하고 있으니 성공적인 인사로 자평했을 듯싶다. 거대 여당은 민주주의 게임규칙까지 바꾼다. 제1 야당을 패싱한 채 선거법을 처리하고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독식했다. 과거 정권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현 정부에선 당연시된다.

민주 독재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 한류’ 소리까지 들었던 한국 민주주의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탄식이 절로 나온다. 문 대통령과 정권의 주축인 586 운동권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586 운동권 지도부는 민주화 운동 경력을 스펙 삼아 국회로 진출하고 청와대를 장악했다. 문제는 이들이 학생운동 목표로 북한과 소련 같은 민중(인민)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꿈꿨다는 점이다. 당시 586 의식 속에 자유민주주의는 들어 있지 않았다. 한국, 미국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타도의 대상일 뿐이었다.

“저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다”라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몰락으로 586의 꿈은 좌절됐지만 민주주의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이 현 정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통해 확인됐다. 이러니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같은 민주주의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할 리 없다. 윤 총장 정직징계에 대한 법원의 효력 중단 결정에 대해 여권에서 “대통령이 재가한 사안을 일개 판사가 뒤집었다. 탄핵시켜야 한다”는 몰지각한 발언이 나온 배경이다. 586의 보좌를 받으며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문 대통령은 그들의 일탈을 수수방관해 비판을 자초한다. 586을 적절히 통제했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비된다. 그때는 586이 청와대 행정관이나 초재선 국회의원들이어서 상대적으로 통제가 쉬웠을 수는 있다.

지금처럼 민주주의가 역주행하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민주주의가 1987년 이전으로 회귀했다는 분석까지 제기된다. 오죽하면 “운동권 독재에 저항하는 새로운 민주화운동이 필요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겠는가. 그나마 진 전 교수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교수, 김경율 회계사,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 등이 “배신자” 소리를 감수하면서도 양심의 소리를 내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한국의 전체주의화를 막을 최후의 보루다.

문재인정부가 민주 독재 정권이라는 오명을 벗는 길은 통합과 화합의 정치뿐이다. 대통령부터 진보진영 대표자에서 국민의 대표자 위치로 돌아와야 한다. 그 첫걸음은 586 운동권과 결별하고 ‘양념’이라고 비호했던 문파들의 극렬 행태를 제어하는 것이어야 한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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