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병마에 대항한 리더십

남상훈 2021. 1. 2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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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연구진 모으고 전폭 지원
말라리아 안전한 치료법 개발
NIH, 세계 의학 메카로 우뚝
새넌 박사의 마인드 되새겨야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은 5000명이 넘는 연구자가 의학 및 공중보건 연구를 수행하는, 보건복지부 소속의 기관이다. 미국 의과학의 상징이 된 NIH는 1887년 뉴욕의 한 작은 박테리아 연구실에서 시작된다. 1840년부터 시작된 서유럽 이민자들로 인해 유입된 콜레라와 다양한 감염병에 대한 연구 목적으로 문을 연 것이다. 이후 1891년 워싱턴으로 옮겨 정식으로 NIH란 이름을 갖게 되고, 1938년 현재 NIH 본부가 있는 메릴랜드주 베데스타 캠퍼스에 자리를 잡는다. 이 캠퍼스의 핵심인 본부 빌딩은 ‘Building One’이라 불리는데, 1938년 이곳으로 이사할 때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 건물을 헌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빌딩의 다른 이름은 제임스 새넌 빌딩이다. 이는 1955년부터 1968년까지 NIH 원장으로 재직하며 NIH를 현재의 NIH로 키워낸 리더십을 발휘한 ‘제임스 새넌’ 박사를 기념하기 위함이다.

제임스 새넌 박사의 리더십은 NIH 원장으로 오기 전 1942년, 태평양전쟁 중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하면서 처음 꽃피운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미군 병사들을 무더운 남태평양으로 내몰았고, 이곳에서 미군 병사들은 일본군만큼이나 무서운 말라리아를 마주하게 된다. 말라리아는 모기에 물리면 모기를 숙주로 삼는 말라리아원충(plasmodium)에 감염되고, 감염되면 이 원충이 적혈구에서 증식하는데, 과다증식하여 적혈구가 용혈되면 높은 열이 나는 등의 증세를 유발하게 된다. 간혹 파괴된 조직 일부가 뇌 속의 혈관을 막아 사망하기도 하는 아주 위험한 감염병이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뇌·인지과학
이런 무서운 말라리아 치료제의 원료인 퀴닌(quinine)은 대부분 동인도제도에서 공급되는데,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일본이 점령한 상태였다. 따라서 미국이 말라리아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독일이 개발한 합성치료제인 아타브린(Atabrine)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군은 병사들을 치료할 충분한 아타브린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주사를 맞고 나면 몸이 아프고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등의 부작용과 더불어 처음 맞은 주사에는 잘 낫지 않는 경우가 많아 치료에 어려움이 많았다.

새넌 박사는 이런 부작용을 극복하여 미군 병사들을 말라리아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방법을 개발하고자 우수하고 열정적인 연구자들을 뉴욕의 골드 워터 메모리얼 병원으로 리크루트하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말라리아를 치료하려면 혈액 속의 말라리아원충을 제거해야 하므로, 주사한 아타브린이 혈액 속에 적정량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혈액 속 아타브린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적정량의 아타브린 주사량을 정할 수 없었다.

이에 연구진은 혈액 속 아타브린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하고자 노력했고 결국 측정법을 개발한다. 이 측정법을 통해 처음 주사한 아타브린이 대부분 혈액이 아닌 근육이나 간 등 조직에 축적됨을 발견했고, 이는 왜 아타브린이 처음 주사에는 효과적이지 않은지를 설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 그래서 연구진은 처음에는 아타브린을 고농도로 주사하여 모든 조직에 충분히 축적되게 하고, 이후 말라리아원충을 제거할 수 있는 적정량의 아타브린을 주사하여 병사들이 부작용 없이 말라리아를 이겨내는 처방법을 개발하게 된다. 이를 통해 전투에서 죽는 병사보다 말라리아로 죽는 병사가 더 많았다고 알려진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은 많은 병사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러한 신화는 우수한 연구자를 발탁한 새넌 박사의 혜안과 연구자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준 새넌 박사의 연구중심 마인드의 결과이다. 태평양전쟁 중 뉴욕 골드워터 메모리얼 병원에서 발휘된 새넌 박사의 리더십은 1955년 NIH에서 다시 발휘되어 뉴욕의 한 연구실에서 시작한 NIH를 세계적인 의학 및 공중보건 연구의 메카로 성장시킨다. 이런 그의 리더십이 NIH 본부건물의 이름으로 영원히 남게 된 이유이다.

코로나19 유행 1년이 된 이 시점, 위기 속에서 수많은 젊은 병사들을 지켜낸 우수한 의과학자와 이러한 의과학자를 하나로 묶어 최고의 기량을 꽃피우게 한 제임스 새넌 박사의 리더십을 우리 모든 국민이 지난 1년 발휘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국민 모두 너무 수고하셨고, 또 존경합니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뇌·인지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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