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코치 정조국 "당장은 컴과 씨름..아내에게 당당해질 그날 꿈꿔요" [전훈 현장]

서귀포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2021. 1. 2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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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정조국 제주 유나이티드 코치가 지난 18일 제주도 서귀포시의 클럽하우스에서 자신의 반성문으로 가득한 수첩을 들고 있다. 서귀포 | 황민국 기자


올 겨울 축구화를 벗은 정조국 제주 유나이티드 코치(37)는 사소한 일상에서 자신의 변화를 실감한다. 눈을 뜨면 커튼을 걷고 날씨부터 확인한다. 선수라면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뛰면 그만이지만, 지도자는 훈련 일정과 프로그램을 죄다 바꿔야 하니 저절로 변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 18일 제주 선수단이 개막을 대비해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현장에서 만난 정 코치는 “‘형’과 ‘쌤’을 오가는 호칭이나 색깔 외엔 변함없는 훈련복은 선수 시절과 같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난 이제 선수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사는 지도자”라고 웃었다.

■컴맹 코치는 힘들지만, “남일형이 천직이래요”

올해 제주 코치로 부임한 정조국의 수첩은 반성문이 가득한 일기장이 됐다. K리그 통산 121골(역대 5위)을 자랑하는 그의 머릿속에 가득한 공격 전술이 자신이 맡은 12명의 선수들에게 전달될 땐 꼬이고 또 꼬인다. 올해 두 번째 훈련에선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슈팅을 때리는 간단한 프로그램이 엉망진창이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정 코치는 품에 안고 있는 수첩을 가리키며 “이 속에 가득한 내용이 당시 반성문”이라며 “선수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전달하고, 효율적인 훈련이 되도록 돕는 게 코치의 역할인데 난 아직 부족하다. 거스 히딩크 감독님과 세뇰 귀네슈 감독님 같은 옛 스승들의 가르침도 되짚고 있다”고 말했다.

화법 뿐만 아니라 ‘컴맹’의 한계도 그의 속을 애닳게 만든다. 원래 은퇴 이후 학원을 다니면서 배우려고 했지만 곧바로 코치직을 맡다보니 간단한 훈련 프로그램도 문서로 만드는데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 훈련 준비에 2시간이 넘게 걸리기 일쑤다. 정 코치는 “그래서 내가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외부에 숙소를 안 잡고 클럽하우스에 사는 것”이라며 “어떤 분들은 막내 코치가 ‘기숙사 사감’을 맡은 게 아니냐고 하시는데 선수들 방은 절대 안 들어간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손을 내저었다.

지도자로 온갖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정 코치가 후배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땐 미소를 되찾았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그는 ‘제2의 정조국’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개인의 컬러를 일깨워주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 공언대로 제주에선 주민규와 진성욱 등 재능있는 선수들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메우려 노력하고 있다. 정 코치는 “(주)민규는 골대 앞에서 무게감이나 골 결정력, 연계 플레이에서 부족함이 없다. 다만 현대 축구에서 요구하는 침투 플레이만 시도해주길 바라기에 조언을 하고 있다”며 “(진)성욱이도 지난해 너무 잘해줬는데 의외로 쉬운 골 찬스를 놓치는 부분을 자극하고 있다. ‘넌 몇 년째 유망주’냐는 농담도 던지는데 성욱이가 곧 무서운 골잡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벤치도 못 앉는 신세…그래도 감독은 꿈

정 코치는 시즌이 개막해도 당분간 벤치에 앉지 못한다. 그가 프로 선수를 지도할 수 있는 라이선스A를 아직 취득하지 못해서다. 주변에서는 선수와 지도자를 병행하는 ‘플레잉 코치’로 등록하면 된다고 귀띔하지만 정 코치는 “편법은 싫다. 난 바닥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는 단계고, 지금 이 순간이 즐겁다. 현재 고등학교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는 라이선스B까지 갖고 있으니 다음 단계의 강습회가 열리기만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축구 선수가 기본기가 중요한 것처럼 지도자고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지금 난 눈 감고도 했던 인사이드 패스를 눈 뜨고도 못하는 선수다. 이걸 잘 해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변에선 이런 정 코치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본다. 남기일 제주 감독은 “정선생이 지금 고생하고 있지만, 그 노력이 결과로 나올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고, 김남일 성남 감독도 사석에서 만나 “천직이네”라고 웃었다. 정 코치는 “(김)남일형은 제가 어릴 때 지도자는 죽어도 안 하겠다고 말한 것을 잊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정 코치는 사실 그 시간을 희생하고 있는 아내 김성은씨가 고맙고 또 미안하기만 하다. 선수 시절에는 육아를 아내에게 맡기고 내달렸고, 은퇴한 뒤에는 짧은 시간만을 같이 보낸 뒤 다시 감독으로 성공할 그 날을 향해 밤을 지새우고 있다. 정 코치는 “우리 집은 애가 셋이다. 나보다 능력있는 아내가 ‘축구선수’ 정조국을 사랑해 모든 걸 희생했고, 이젠 ‘축구감독’ 정조국의 성공을 위해 또 희생한다. 진짜 내 편인 아내에게 당당해질 그 날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귀포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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