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쓰는 코치' 정조국
컴맹이라 훈련 정리도 벅차지만
차근차근 라이선스A 취득할 것
"희생하는 아내, 고맙고 또 미안"
[경향신문]
올겨울 축구화를 벗은 정조국 제주 유나이티드 코치(37)는 사소한 일상에서 자신의 변화를 실감한다. 눈을 뜨면 커튼을 걷고 날씨부터 확인한다. 선수라면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뛰면 그만이지만, 지도자는 훈련 일정과 프로그램을 죄다 바꿔야 하니 저절로 변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18일 제주 선수단이 개막을 대비해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현장에서 만난 정 코치는 “ ‘형’과 ‘쌤’을 오가는 호칭이나 색깔 외엔 변함없는 훈련복은 선수 시절과 같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난 이제 선수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사는 지도자”라며 웃었다.
올해 제주 코치로 부임한 정조국의 수첩은 반성문이 가득한 일기장이 됐다. K리그 통산 121골(역대 5위)을 자랑하는 그의 머릿속에 가득한 공격 전술이 자신이 맡은 12명의 선수에게 전달될 땐 꼬이고 또 꼬인다. 올해 두 번째 훈련에선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슈팅을 때리는 간단한 프로그램조차 엉망진창이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정 코치는 품에 안고 있는 수첩을 가리키며 “이 속에 가득한 내용이 당시 반성문”이라면서 “선수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전달하고, 효율적 훈련이 되도록 돕는 게 코치의 일인데 난 아직 부족하다. 거스 히딩크 감독님과 세뇰 귀네슈 감독님 같은 옛 스승들의 가르침도 되짚고 있다”고 말했다.
‘컴맹’의 한계도 속을 답답하게 만든다. 원래 은퇴 이후 학원을 다니면서 배우려 했지만 곧바로 코치직을 맡다보니 간단한 문서 작업도 쉽지 않다. 훈련 내용 정리에 2시간이 넘게 걸리기 일쑤다. 정 코치는 “그래서 내가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외부에 숙소를 안 잡고 클럽하우스에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코치는 시즌이 개막해도 당분간 벤치에 앉지 못한다. 프로 선수를 지도할 수 있는 라이선스A를 아직 취득하지 못해서다. 주변에서는 선수와 지도자를 병행하는 ‘플레잉 코치’로 등록하는 편법을 알려주지만 정 코치는 “편법은 싫다. 난 바닥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는 단계고, 지금 이 순간이 즐겁다. 현재 고등학교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는 라이선스B까지 갖고 있으니 다음 단계 강습회가 열리기만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정 코치는 사실 그 시간을 희생하고 있는 아내 김성은씨가 고맙고 또 미안하기만 하다. 선수 시절에는 육아를 아내에게 맡긴 채 내달렸고, 은퇴한 후에는 짧은 시간만을 같이 보낸 뒤 다시 감독으로 성공할 그날을 향해 밤을 지새우고 있다.
정 코치는 “우리 집은 애가 셋이다. 나보다 능력 있는 아내가 ‘축구선수’ 정조국을 사랑해 모든 걸 희생했고, 이젠 ‘축구감독’ 정조국의 성공을 위해 또 희생한다. 진짜 내 편인 아내에게 당당해질 그날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귀포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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