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아프면 쉬어라
[경향신문]
‘아프면 3~4일 쉬어라.’ 코로나19 사태 초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정부가 강조한 생활방역 제1수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노동자들은 “아플 때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라고 반문한다. 지난해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3780명을 대상으로 휴가 사용 실태를 설문한 결과 응답자 43%가 회사에서 자유롭게 연차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비정규직에만 물으면 이 답변은 52%로 올라간다. 응답자 74%는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분위기가 코로나19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우리 땐 아무리 아파도 해열제 먹고 버텼어.” 개근을 미덕으로 삼는 직장 상사나 회사 분위기 때문이라면 그나마 좀 낫다. 지난해 3월 구로동 콜센터와 5월 부천의 쿠팡 물류센터 집단감염 당시 경향신문 취재망에는 아파도 쉴 수 없는 사람들, 하루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확진자들의 동선이 포착됐다. 새벽에 녹즙을 배달한 후 구로구 콜센터로 두번째 출근을 했던 이, 아파도 참으며 콜센터와 부천 쿠팡 물류센터를 오간 확진자들의 동선에서 투잡·스리잡들의 고단한 일상이 드러났다. 적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선 아파도 버티다 확진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 선진국에선 아플 땐 쉬어도 소득을 보전해주는 ‘상병수당’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OECD 36개 회원국 중에선 한국만(미국은 일부 주 예외) 시행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20일 한국노총·민주당 노동존중실천단 2호 법안으로 상병수당을 제도화한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해 7월 정부가 한국판 뉴딜정책을 발표하며 2022년 취약계층부터 시범사업으로 상병수당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제야 법안 발의로 시동을 건 것이다. 1999년 국민건강보험법 제정 당시부터 법에 규정된 상병수당 논의가 21년 만에야 비로소 이뤄지게 됐다. 법이 통과돼도 시행은 6개월 후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노동자들은 지금도 대부분 유급병가가 보장돼 있다. 아파도 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아프면 쉬라는 말은 잔혹하다. 코로나 백신 못지않게 아플 때 맘 놓고 쉴 수 있는 상병수당이라는 ‘사회적 백신’을 준비하는 것도 하루가 급하다.
송현숙 논설위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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