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백해무익 담배 끊어봅시다".. 100년 전 새해결심
금연관련 유익한 내용 홍보가 주류 '모던걸' 여성 흡연 위험성 기사로 당시 담배값 줄여 국채보상운동 요즘같은 코로나시대 금연하시길…
흔히 새해를 맞으면 많은 사람들은 목표를 세우고 반드시 지키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새해 결심'의 단골손님은 아마 금연(禁煙)일 것이다. 물론 대부분이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난다. 작심일일(作心一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100년 전 새해에도 "올해는 반드시 담배를 끊겠다"는 애연가들이 많았다. 근대뉴스에 담긴 금연(禁煙)과 담배 이야기들을 알아보자.
1897년 5월 27일자 그리스도신문은 담배의 해로움을 지적하면서 흡연에 따른 건강 악화의 치유법으로 커피를 추천해 눈길을 끈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은 여러 가지 병이 있는데, 근육이 약해지고 가슴이 답답하게 되며 심장(박동이) 더 벌떡거리고 수전증이 나며 시력에도 좋지 않다. 담배 중에서도 외국에서 들여온 지권연초(紙卷煙草, 종이로 만 담배)는 해로움이 더욱 많은데, 그 담배 마는 종이를 제조할 때에 독성이 있는 성분을 넣고 만들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담배를 많이 피워 이런 독함이 있는 사람은 해독을 위해 검은 커피를 먹으면 좋다. 그러나 세상의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다 담배를 끊으면 유익한 것이 매우 많을 줄로 안다."
1920년 4월 22일자 동아일보에는 조선인의 위생사상 보급에 관한 김기영(金基英) 씨의 기고가 실려있다. 기고는 "조선인이 일반적으로 체격이 장대한 것은 위생사상의 결핍으로 인하여 신체 허약자는 일찍 사망하고 비교적 신체가 강한 자만이 살아남은 까닭이요, 또 면적에 비하여 인구가 희소한 때문"이라며 건강하게 살기위해선 금연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런 폐해 때문에 당시의 지면에선 금연 동맹회 설립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20년 8월 27일자 동아일보는 "전라북도 태인(泰仁)의 이단동맹회(二斷, 금주·금연)를 비롯하여 많은 곳에서 금주·금연동맹회가 설립되고 있다"고 전한다. 1921년 2월 17일자 조선일보도 "경성 중앙기독교청년회 소년부에서는 17일 오후 7시 30분부터 금주·금연 강연회를 개최했다. 김일선(金一善) 씨가 '능단시호웅(能斷是豪雄, 능히 끊을 수 있는 것이 호걸·영웅이다)'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 뿐 아니라 외국에 있는 교포들 사이에도 금연에 관한 활동이 많았다.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종교단체 대표 10여명이 모여 한인교풍회를 조직하여 하와이 한인들에게 잡기, 아편, 담배 등의 폐습을 교정하여 금지하자고 하였다. (1923년 12월 20일 신한민보)", "흡연으로 말미암아 신경이 위축되어 변(便)작용을 민첩하게 못하는 까닭에 변비 환자가 많이 생기고, 또한 경제적으로도 오늘 조선의 땅 한 평에 1전 짜리가 많은데, 1~2전짜리 권련 한 개비를 피우는 것은 땅 한 평씩을 태워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1929년 4월 25일 신한민보)"
여성 흡연의 위험성도 경고한 기사도 눈에 띈다. 1927년 4월 29일자 동아일보에는 "요새 모던걸(신식여자)들 간에는 담배 먹는 것이 유행이 된다는데, 그 까닭은 뚱뚱해지는 것이 싫어서 살을 내리라고 그런다고 한다. 하지만 의사의 말을 들으면 담배는 위를 해(害)치니 살도 내리는 것이라 한다"고 써있다.
금연 운동과 함께 담배 값을 아껴 좋은 용도로 쓰자는 운동도 벌어졌다. 국민들이 돈을 모아 나라 빚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의 주요 활동 중 하나도 금연운동이었다. 여기에는 일본 담배가 시장을 장악하면서 담배가 일본의 경제 침투를 상징하는 상품이 됐다는 점도 고려됐다. 다음은 1910년 3월 9일자 신한민보의 기사다. "학생 이대위의 학비를 돕기 위하여 김진규 씨가 자신이 즐기던 담배를 끊는다 하니 이에 동포 20여명이 동맹하여 담배를 끊고 그 돈을 모아 매년 300여원을 기부하여 유학생들의 학업을 권장하니 이러한 도움을 받는 학생들은 더욱 굳은 마음으로 학업을 성취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말기로 갈수록 국방헌금을 위해 금연을 권장하는 일이 벌어진다. 1933년 2월 9일자 매일신보에는 "경북 예천군에서는 농업진흥지도원들이 일반의 모범이 되고자 금연을 하여 용비(冗費, 쓸데없는 비용)를 모아 국방헌금에 충당하고자 실행 중이다"는 기사가 실려있다.
그렇다면 당시의 담배 소비량은 얼마나 되었을까. 신한민보의 조사에 따르면 1928년 조선에서 소비된 연초 매출은 3704만원이었다. 도별로 보면 경기도가 686만원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경상남도로 399만원에 달했다. 1941년 1월 31일자 매일신보에도 '1940년 10~12월까지 3개월간 2100만원을 연기로 날렸다'는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기사는 "담배 판매액이 증가하는 것은 지금까지 권련을 먹지 않던 사람도 권련을 먹게 되고, 그 전에는 값싼 담배를 먹던 사람도 값 비싼 고급 담배를 많이 피게 된 때문이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흡연의 증가는 아마도 암울했던 시대 탓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가 하면 유럽에 우리나라의 잎담배를 처음으로 수출하게 되었다는 기사도 흥미를 끈다. 1935년 11월 28일자 신한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조선의 입담배가 구주(歐洲) 각국에 수출되게 되어 '슬리퍼'와 같이 조선 산물로서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지난 10월 28일 대구 전매지국에서는 구주의 서서(西瑞, 스위스), 토이기(土耳其, 터키), 애급(埃及, 이집트) 등 국가에 수출할 연초 15만관, 가격으론 425만원 상당을 동경 공동연초수출회사의 손을 거쳐 계약이 성립되었다는데, 조선에서 재배한 잎담배가 구주 방면으로 대량의 수출을 보게 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더라."
금연은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요즘 같은 코로나 유행시대에는 본인과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 더 더욱 그럴 것이다. 올해는 소의 해이다. 우보만리(牛步萬里)라는 말이 있다. 소의 걸음이 느리지만 결국은 만 리를 간다는 뜻이다. 새해의 소망이 금연(禁煙)이든 아니면, 그 무엇이든 간에 꾸준히 노력한다면 모두들 건강하게 웃는 모습이 될 것 같다. 올해에는 꼭 금연(今煙)하지 말고 금연(禁煙)하시기를….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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