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대-중소기업 기술분쟁에 국민참여제를 / 박희경

한겨레 입력 2021. 1. 20. 18:56 수정 2021. 1. 2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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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분쟁은 기업 규모, 자본력, 정보력의 차이 등으로 발생하는 태생적 불평등과 증거의 구조적 편재에서 오는 실질적 불평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기술침해 관련 분쟁은 단순한 사법(私法) 관계의 분쟁으로 치부하기에는 국민경제의 지속성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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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경ㅣ변호사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분쟁은 기업 규모, 자본력, 정보력의 차이 등으로 발생하는 태생적 불평등과 증거의 구조적 편재에서 오는 실질적 불평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실제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대기업은 대형로펌 변호인단을 앞세워 엄청난 양의 소송 서면을 제출함으로써 중소기업을 질적·양적 수세에 몰리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법관의 판단이 소송의 대원칙인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대기업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지만, 이는 실체적 진실 발견 및 재판의 공정성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실체적 진실 및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일방 당사자의 막대한 자본력과 인적 네트워크에 치우치지 않고, 당사자가 제공하는 증거자료나 정보를 법관이 합리적이고 중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고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복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합의체 또는 전문가 집단에서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거친 후 사실관계를 종합·분석하는 구조로 운영되는 국민참여제도 도입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고도로 복잡화·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법률전문가인 법원이 모든 분야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분쟁사건에 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기술분쟁에 있어 오판의 위험성은 항상 존재한다. 가령, 스크린 프린터에 대한 기술침해 여부를 분석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잉곳(Ingot), 웨이퍼(Wafer), 메탈리제이션(Metalization) 공정 등의 기술적 용어조차 낯선 법률전문가에게 고도로 세분화된 스크린 프린터 기술의 침해 여부를 분석하게 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위협하는 또 다른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국민참여제도의 도입 형태는 ①현행법상 존재하는 감정인 제도 등을 개선하여 변호사, 변리사, 법학 교수, 전문분야 교수 등 다수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기술침해평가위원회를 구성·운영하는 방안과 ②각 전문분야에서 일정 기간 이상 기술자로서 근무한 경력 또는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있는 일반 국민으로 배심원단을 구성하여 운영하는 방안이 있다. 위 두 방안은 구성원의 전문성, 자격 등에서 일부 차이가 있을 뿐, 복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합의체에서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거쳐 기술침해 여부를 분석하고, 법원은 법률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본질은 동일하다. 결국 기술침해 관련 소송에서의 국민참여제도는 그 도입 형태가 어떠하든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재판 절차와 결과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성을 담보하는 것에 그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 않고 국민의 건전한 상식이나 정의 관념을 반영할 필요가 있는, 대규모 개인정보 침해에 의한 집단적 분쟁사건 등에 한하여 국민참여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기술침해 관련 분쟁은 단순한 사법(私法) 관계의 분쟁으로 치부하기에는 국민경제의 지속성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매우 크다. 중소기업에 있어 핵심기술은 사업의 존폐를 결정하는 본질적 구성요소이자 회사의 필수 자산이다. 기술에 대한 정당한 가치평가 및 기술보호에 대한 건전한 거래질서 확립을 위해서라도 기술분쟁에서 국민참여제도는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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