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의달의 글로벌 프리즘] '트럼프' 쫓아낸 美 '빅테크' 기업들..새로운 '디지털 독재'하나 ?
구글·애플·아마존·트위터 등 이른바 미국의 내로라 하는 ‘빅테크(Big Tech)’ 기업들은 법 위에 존재하는 무소불위의 존재인가? 트위터는 이달 8일 8900만명의 팔로우를 갖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영구정지시켰다.

구글과 애플은 같은 날 미국 보수성향 이용자들에게서 인기를 모은 SNS ‘팔러(Parler)’ 앱(app)을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에서 각각 퇴출시켰다. 하지만 그 이후 미국 안팎에서 ‘빅테크’ 기업들의 행태를 우려하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反트럼프 지도자와 단체도 ‘빅테크' 문제 지적
흥미로운 것은 트럼프에 비우호적인 지도자와 단체들까지 ‘빅테크’의 문제점을 제기한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와 정치적 앙숙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정부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표현의 자유는 ‘특정 회사의 조처에 따라 제한돼서는 안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안드레아스 마누에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추가 폭력 선동’ 위험이 있다며 계정을 정지하는 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이라며 “다음 G20정상회의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겠다”고 했다. 비판 대열에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마이클 맥코맥 호주 부총리,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 맷 행콕 영국 보건장관, 조쉬 프라이덴버그 호주 재무장관 등 자유민주 선진국 각료들이 동참했다.
프랑스의 클레망 본 외교부 부장관은 “민간 기업이 대통령의 SNS 계정을 영구 정지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며 “이것(대통령의 계정 폐쇄)은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시민들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反)보수 성향인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를 영원히 축출하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수십억명이 쓰는 플랫폼에서 트위터, 페이스북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온건 보수파로 트럼프와 사이가 껄끄러운 마르코 루비오 연방상원의원(공화당)도 “우리는 선출되지 않은, 책임질 수 없는 네댓개의 회사가 권력과 독점권을 가지고 있고 디지털 플랫폼에서 사람들을 지워버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뤼샹(呂祥) 중국사회과학원 미국학 연구원은 최근 관영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정지한 미국 거대 IT기업들은 그들과 다른 정치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미국 국익에 반하는 유럽의 다른 지도자를 처벌하기 위해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빅테크 기업’들이 타국의 발언권 탄압에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 클라우드 서비스 盲信 벗어나야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세계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인 아마존이 이달 9일 신생 SNS인 ‘팔러(Parler)’에 대한 웹 서비스 제공을 전격 중단한 일이다. 2018년 8월 서비스를 시작한 ‘팔러’는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며 정치적 발언이나 인종 혐의적인 포스팅에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올 1월 현재 1500만명이 가입해서 이 가운데 열성 이용자는 230여만명이다. 트위터가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정지시킨 이달 8일, ‘팔러’ 앱은 21만회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트위터’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마존은 9일 낮 “다음날(1월10일) 밤 11시59분부터 팔러 앱에 대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수주일간 ‘팔러’ 앱에 올라온 폭력 선동형 포스팅 98개에 대해 팔러측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따라 ‘팔러’ 앱은 사전 경고나 유예 기간조차 없이 오프라인으로 즉각 퇴출됐다.
김재환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미국에서 현행법 위반이 확정되지도 않은 기업을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차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방적인 계약 무효화에 따르는 문제 소지가 커 보인다”고 말했다.
에블린 드웩(Evelyn Douek)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이 자사의 클라우드 웹서비스 안에 있는 다른 비슷한 폭력선동성 콘텐트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조치를 않고 있나”고 했다. 아마존이 정치적 이유에서 자의적으로 서비스 중단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이다.

김정환 부경대 교수(미디어 경영학)는 “아마존의 ‘팔러’ 앱에 대한 조치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맹신(盲信)에서 벗어나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말했다. 존 매츠(John Matz) 팔러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는 “아마존이 명백하게 정치적 악의(惡意)를 갖고 우리에 대한 서비스를 차단했다”며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아마존에 대한 소송을 냈다.
‘팔러’는 이달 18일(현지시간) ‘디도스 가드(DDos-Guard)’라는 러시아 기술 기업의 지원을 받아 서비스를 간신히 재개했으나, 아마존의 조치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분석이다.
◇‘원칙' 보다 ‘이익' 추종하는 빅테크 기업들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공통된 우려는, 이들이 일관된 ‘원칙’을 적용하기는커녕 ‘자사 이익(利益)’에 따라 고무줄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독극물 암살을 당할 뻔 했던 러시아의 야당 지도자 알렉시이 나발리는 지난주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년 동안 나에게 매일 암살 협박을 한 사람이 있어도 트위터는 (규정 위반을 적용해) 금지하지 않았다. (트위터의 트럼프 계정 폐쇄는) 인정할 수 없는 검열이며, 앞으로 언론의 자유를 싫어하는 적들에게 이용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빅테크 기업들의 ‘트럼프 차단’은 국민들이 선출하지 않는 기업들이 밀실(密室)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국민이 직접 뽑은 정치 지도자들의 소통 채널을 막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더 큰 논란을 낳고 있다.
박상현 코드미디어 디렉터는 “트럼프의 민주주의 파괴 행위를 규탄하던 사람들로서는 통쾌한 일이겠으나, 트럼프의 권력이 살아 있던 수개월 전에는 절대로 (계정 정지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운 결정”이라고 했다.

더욱이 빅테크 기업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떤 기준을 적용해 특정 개인이나 기업을 퇴출하는지를 일절 밝히지 않고 있다. ‘깜깜이’ 상태에서 극소수 임원들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특정 대상을 디지털 공간에서 쫓아내는 것은 ‘신종 디지털 독재’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미국 7대 빅테크 기업들의 시가총액(2020년 12월 31일 기준) 합계는 지난 1년간 3조 4000억달러(약 3700조원) 증가해 세계 5위인 인도의 국내총생산액(2019년 GDP·2조8751억달러)을 능가했다.
이렇게 거대해지는 빅테크 기업들을 방치했다가는 서방 선진국에서 ‘디지털 과두제(寡頭制)’가 현실화돼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드 러벤펠드(Jed Rubenfeld) 예일대 교수는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은 서비스 계약조건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리바이어던(Leviathan·바다괴물)’ 같은 존재”라며 “이들의 책임을 광범위하게 면제해주는 ‘통신품위법 230조(Decency Act 230)’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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