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재보궐선거 비용에 대한 상상과 정치개혁 / 김상철

한겨레 2021. 1. 2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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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ㅣ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기획위원

‘올해 왜 선거를 해?’라고 묻는 아이의 물음에 며칠 동안 민망해하다가 쓴다. 다음 세대는 앞선 세대의 염치를 보고 세상을 배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라도 바꿔보자는 마음에 동료 시민들에게 제안한다. 올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비용을 유권자인 우리가 내자. 원인을 제공한 정당이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내겠다고 고집했던 상황에서 최소한의 염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헌법은 선거공영제를 채택하고 있다. 적어도 선거는 돈에 좌우되지 말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 좋은 제도가 구상권 행사의 길을 막았다. 개인에게도 정당에도 청구가 되지 않는다. 몇차례 법 개정이 시도되었으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였다. 선거공영제는 그 제도를 악용하는 정치세력을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세력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자.

비극은 이번과 같은 일이 불과 10년 전인 2011년에도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거대 정당 두 곳이 나란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원인을 만들어놓고도 서로 손가락질하기에 바쁜 상황은 어쩌면 비극이라기보다는 희극에 가까울 수 있겠다. 법에 따르면 지방선거 비용은 지방정부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는 중앙정부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2011년 보궐선거로 서울시는 226억원을 사용했다. 당시 주민투표 비용을 포함하면, 오세훈 시장의 사퇴 이유인 무상급식의 사업 비용 절반이 넘는 돈을 사용했다. 올해 보궐선거 예산(서울시)으로 301억원이 편성되어 있다. 261억원은 선거사무를 대행하는 선관위에, 40억원은 시나 구의 선거사무에 사용된다. 2019년 결산 기준, 서울시가 누리과정 보육료 지원으로 25개 자치구에 나눠준 돈이 265억원이었고, 장애인 활동급여 지원액이 287억원이었다. 버스사업자에게 지원하는 시내버스 지원금이 291억원이었다. 그러니까 국가의 아이들 보육비용을 서울시가 보조하는 비용보다, 장애인들이 사회활동을 하는 데 지원하는 돈보다, 시민들에게 버스를 제공하면서 드는 돈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비용이 더 크다.

물론 선거의 의미를 낮게 볼 생각은 없다.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민주주의의 비용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시민의 선택이어야지 책임을 져야 할 정당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었다. 집권여당의 당대표 입에서 ‘후보를 내는 것이 책임정치다’라는 말이 나올 때 모욕감까지 느꼈던 이유다. 예산이라는 것은 어디에 가져다 쓰면 다른 곳엔 비게 되어 있다. 서울시가 저 선거비용을 어디서 가져다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논란 많은 광화문광장을 구태여 한다는 걸 보니 필요한 조정보다는 만만한 조정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안 그래도 박원순 시장 사후 껄끄러웠던 사업들의 예산이 줄줄이 줄었다는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서울시민들이 내는 주민세는 고작 4800원으로 대부분의 지방정부가 1만원의 주민세를 걷는 것과 비교된다. 현행 지방세법에는 표준세율의 50%는 가감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면 2400원은 더할 수 있다. 물론 2020년 국회의원 선거 기준으로 서울의 유권자가 846만명이기 때문에 이들이 301억원의 비용을 조성하려면 1인당 3500원 정도의 기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다 납세가 가능한 것은 아닐 테니 좀 더 부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풀면 좋겠다. 그래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요인이 발생하면 그해에만 여기에 50%를 더해서 징수하는 방식으로 조례를 개정하면 어떨까. 후보자를 낸 정당이 책임을 지지 않으니 결국 선거권을 행사한시민이라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현재 상황에선 정치자금 방식으로도, 기탁금 방식으로도 선거비용을 시민이 부담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제안한다. 일단 약정운동이라도 하자. 그 외의 방법들이 있는지 머리를 맞대어 보자. 정치개혁이란 것이 별것 있나 싶다. 염치라도 알게 하는 것이 시작이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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