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작은 영화제들, 위기일까 기회일까

고경석 2021. 1. 2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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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은 자신의 단편 ''완벽한 도미요리'가 2005년 미쟝센단편영화제 에서 '절대악몽'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추격자'(2008)로 데뷔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는 한국 독립영화가 변화하는 계기가 될까, 산업이 흔들리는 위기가 될까. 변화의 조짐은 영화제와 배급ㆍ영화관 업계에서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KT&G의 예술영화전용관 상상마당 일시 운영 중단에 이어 멀티플렉스업체 CJ CGV의 예술ㆍ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CGV 아트하우스’ 운영을 맡고 있던 조직이 해체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또 최근 들어선 지난 20년간 신인 감독, 독립영화 감독의 등용문이 됐던 미쟝센단편영화제와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잇달아 폐지를 선언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변화를 한국영화의 여러 토대 중 하나인 단편영화와 독립영화가 위축되고 있다는 신호로 보고 있다. 특히 미쟝센단편영화제는 ‘명량’의 김한민, ‘곡성’의 나홍진,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윤종빈, ‘늑대소년’의 조성희, ‘벌새’의 김보라 등 쟁쟁한 감독들을 배출하며 재능 있는 신인 연출자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온 터라 영화인들이 느끼는 아쉬움이 크다. 영화제 측은 지난 13일 공식 발표를 통해 “올해 20주년을 기점으로 영화제 형식의 페스티벌을 종료한다”면서 올해 행사는 경쟁 부문 공모 없이 20주년 기념 프로그램으로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20회 행사를 마친 인디다큐페스티발도 최근 영화제 및 사무국 운영 잠정 중단 소식을 알렸다. 일반 극장 개봉이 쉽지 않은 수많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온 이 영화제는 오랜 기간 재정난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국 측은 지난달 31일 “팬데믹 상황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영화제를 지속할 수 있는 물적 기반과 새로운 동력을 갖추기 위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서 일정 기간 영화제 개최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온라인으로 열린 19회 미쟝센단편영화제 포스터

20년간 이어오며 한국영화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영화제들이 연이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계는 충격에 빠졌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미쟝센단편영화제나 인디다큐페스티발 모두 독자적인 색깔을 지닌 오랜 연혁의 영화제인데 이런 영화제들마저 살아남지 못한다면 이를 시작으로 비슷한 영화제들도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KT&G나 CGV, 미쟝센단편영화제의 경우 모두 대기업과 관련이 있어 코로나19로 기업들이 문화 관련 사업이나 지원을 축소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체마다 사안이 달라 동일한 관점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영화계나 영화제를 둘러싼 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어 그에 따른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만은 같다.

KT&G 측은 “코로나19 이전부터 넷플릭스나 IPTV 등 온라인 채널 확대로 상영관 관객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재정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CGV는 상영관 수 축소와 프로그램 다각화 등을 통해 극장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조성진 CGV 전략지원담당은 “아트하우스팀은 해체된 것이 아니라 조직 이동일 뿐”이라면서 “최근 들어 상업영화 개봉작 수가 줄고 독립영화나 저에산영화의 개봉 기회가 예전보다 늘어서 오히려 아트하우스 팀의 역할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미쟝센단편영화제를 후원해 온 아모레퍼시픽은 앞으로도 영화제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 감독들과 함께 미쟝센단편영화제 탄생을 이끌었던 이현승 명예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가 계기가 되긴 했지만 급변하는 영화 생태계 속에서 더 이상 예전의 방식대로 영화제를 운영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기에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20회를 맞아 열린 인디다큐페스티발 포스터.

영화계에선 코로나19를 계기로 영화제나 독립영화가 나아갈 길을 질문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영화 산업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비중이 급격히 커지는 등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더 이상 극장 중심의 영화제 운영이나 독립영화 제작만 고집해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현승 감독은 “영화제가 폐지되는 게 아쉽긴 하지만 OTT나 유튜브 등 단편영화를 볼 수 있는 창구가 이미 충분히 많은 상황에서 영화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서울독립영화제를 이끌었던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인디그라운드의 조영각 센터장은 “작은 영화제들이 한국영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영화제 운영도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이 된 것 아닌가싶다”면서 “영화제들도 이런 변화 속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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