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갯벌에서 김이 자란다
갯벌에서 뜨는 아침 해를 보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늘 궁금했다. 간혹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본 적은 있지만 물이 빠진 갯벌 복판에서 본 적이 있던가. 눈이 시릴 만큼 차가운 곰소만 ‘뻘밭’에서 새벽을 맞았다. 손도 시리고 발도 시리고 입도 얼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겨울 갯밭에 보는 일출이라니. 아름답기까지 하다. 겨울바다는 명징하다. 갯벌도 겨울에 제 모습을 잘 드러낸다. 추우면 몸을 감추는 인간들과 다르다. 나무가 겨울에 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일출은 황홀하고 찬란했다. 그 추위에 갯벌에서 김이 자란다. 새벽에 그 김을 채취하러 가는 어민들이 있었다.
친환경 지주식 김 양식
곰소만이 어떤 곳인가. 조기와 소금, 꽃게와 주꾸미를 품었던 바다다. 바지락과 동죽과 백합을 살찌게 하는 바다다. 갯벌은 연안습지보호지역과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과 갯벌 세계유산후보지역으로 최종결정을 앞두고 있다.
그 중심에 지주식 김 양식을 하는 만돌마을이 있다. 마을에는 140여 가구 중 40여 가구가 250ha 김 양식을 하고 있다.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이루어지는 김 양식은 크게 지주식과 부류식으로 나뉜다. 지주식 김은 갯벌 위에서 김이 자란다. 부류식 김은 수 많은 스티로폼으로 양식그물을 바다에 띄워 양식을 한다.
하지만 지주식 김은 대나무를 꽂아 그물을 묶어 김을 양식하기 때문에 스티로폼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힘이 많이 든다. 손도 많이 필요하다. 규모로 보면 부류식은 수백 책에서 천여 책에 이르지만 만돌마을은 70여 책에 불과하다. 소규모지만 마을 주민들이 비슷하게 나누어 양식을 한다. 또 몇 가구가 품앗이를 하듯 돌아가면서 차례로 채취한다.
과거에는 김 양식장의 위치도 매년 추첨해서 정했다. 어촌에서 마을어장을 이용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찬바람이 나는 10월이면 김 포자(씨앗)를 바다에 넣는 날은 김 양식 풍년을 기원하는 기원제도 지낸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김 농사를 짓고, 의례마저 이어가는 마을이다.
소비자들은 김을 선택할 때 염산을 사용한 것을 걱정한다. 만돌 지주식 김은 염산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니 사용할 수가 없다. 봄이 되면 그 갯벌에서 바지락과 동죽을 채취한다. 염산을 처리한다면 패류양식을 하는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듣기 때문이다. 대신에 장기간 햇볕에 노출해서 단련을 시킨다. 지주식 김은 감칠맛만 좋은 것이 아니라 바다에도 바다생물에게도 물새들에게도 유익하다.
좋은 김을 원하면
녹차도 그렇지만 김도 두 물 맛이 좋다. 고창군 심원면 만돌마을 김덕만(1945년생)은 눈이 내린 다음날 두 물 김을 채취했다. 첫 물 김은 한 달 전에 채취했다. 두 물은 물어보지도 못하고 사야한다. 그런데 첫 물인지 두 물인지 소비자들이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등급제라도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어림잡아 산지에서 12월에서 1월에 나오는 김이 좋다. 2월말에서 3월로 가면 끝물이다. 김이 거칠다. 이때 김은 김밥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구이용 김을 원하면 지금 김이 좋다. 좋은 김을 사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이유다. 생산자들은 물김을 공장에 넘겨 가공을 하지만 자신이 먹고 찾는 사람에게 줄 가공한 김을 가져온다. 그 김을 사면 좋다.
그것도 어려우면 단골 김 판매점을 만드는 것이 방법이다. 가공 김도 초벌김, 두벌김, 세벌김, 네벌김 등 시기를 적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가공업체는 두 세 개의 김을 섞어 상품을 만든다. 마치 커피의 브랜딩과 같다. 용도에 맞게 두껍게, 장력이 강하게, 거칠게, 부드럽게 등 다양하다.
두 물째 채취한 물김을 가져다 떡국을 끓이는데 넣었다. 맛이 좋다. 따로 조미를 하지 않아도 된다. 김이 조미역할을 톡톡히 했다. 갯벌위에서 김을 채취하면서 뜯어 먹을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이런 맛을 감칠맛이라 하는구나 싶었다. 왜 지주식 김이 맛이 있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맛은 분명 가게에서 사 먹는 김과 달랐다. 하물며 구워 먹는 것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며칠 전 폭설에 만돌마을 지주식 김 양식장이 큰 피해를 입었다. 물이 빠진 상태에서 눈이 많이 내려 김발 위에 쌓이면서 갯벌과 김과 눈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여기에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조류를 따라 엄청난 무게가 움직이자 버티던 기둥이 쓰러지고 말았다. 40여 가구 중 반은 피해를 입었다. 6년 전에도 같은 일이 발생했었다. 겨울철에 다섯 번 정도 채취해야 하는데 두세 번 채취했으니 어민들의 마음이 타들어 간다. 지주식 김 양식을 하는 어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아픔이다.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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