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어느 멋진 날 (하) / 리우진

한겨레 2021. 1. 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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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2020 공모전
소장이 10만원을 건넸다. 나는 천원을 거슬러 주었다. 안전화 5만5천원, 택시비 4500원, 각반 2천원, 목장갑이 천원, 점심값이 5천원, 그래서 지출은 6만7500원. 나는 오늘 나의 몸으로, 나의 노동으로 3만1500원을 벌었다. 하얀 담배 연기가 하필 눈에 들어가서 눈꼬리가 살짝 젖어버렸다.

리우진ㅣ연극배우

택시를 잡아탔다. 새벽이라 그런지 인력사무소에 5시 전 도착했다. 조금 있으니 사람들이 하나둘 사무실로 들어와서 금세 앉을 자리가 없게 되었다. 사무소장이 이 일이 처음이냐고 묻는다. 안전화는 준비했느냐, 각반은 준비했느냐 등을 물어보고 일당은 일 끝내고 사무실에 와서 받아도 되고, 원하면 계좌로 넣어줄 수도 있다고 한다. 소개비 10%를 제하고 9만9천원이 일당이라고 한다. 각반과 혹시 몰라 목장갑 두켤레를 샀다. 전화를 계속 하던 사무소장이 6시가 다 되어갈 즈음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호명했다. 누구씨, 누구씨 일단의 사람들을 묶어서 어디 어디 현장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현장으로 배정받았다. 같이 배정된 이들과 지하철을 탔다. 가는 동안 다들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하긴, 새벽 일찍부터 나와 다들 피곤할 터인데 낯선 이들과 무슨 대화를 하겠는가.

나는 이날 어째서 지하철 첫차에 그렇게 많은 승객이 있는 건지 처음 알았다.

내가 간 곳은 대형 쇼핑몰 리모델링 현장이었다. 서울에 올라온 시골 쥐처럼 아무것도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어떤 중년의 책임자가 나와 다른 인력사무소에서 온 사람들 몇몇을 창고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안전모를 나눠주고는 티비엠(TBM·tool box meeting)에 참석하라고 한다. 작업 일정을 설명해주고, 주의 사항을 전달하고, 안전모나 각반 착용 여부 등의 복장 상태를 점검하는 시간이다. 티비엠을 마치고 책임자한테 그날 할 일을 배정받았다. 저마다 일을 맡아 자기 구역으로 가고 혼자 남겨진 나에게 맡겨진 일은 건물 한 층의 좁은 배수구 청소였다.혼자 일하는 게 마음 편하고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 넓은 층의 좁은 배수구와 그 주변을 청소하는데, 처음에는 그런대로 진도가 나갔다. 하지만 조금 있으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고 다리도 무척 아팠다. 한참을 작업했다 생각하고 시계를 보니 아직 30분도 지나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벌써 이러면 남은 하루를 어떻게 버틴다? 쓰레기를 쓸고, 굳은 흙은 망치로 쪼아서 잘게 부수고 다시 쓸어 구간마다 마대자루에 모아놓는 일이었는데 아무리 해도 진척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작업하고 있는데 책임자가 오더니 하던 일은 놔두고 자기를 따라오란다. 이번엔 폐자재 옮기는 일을 하란다. 건설현장에서 기술자들이 작업하고 나면 폐자재들과 각종 쓰레기가 나오는데 우리 같은 잡부들이 그다음 공정이 수월하도록 뒤따라가며 청소하는 것이었다. 그날 하루만도 여기저기 옮겨 일하길 수차례였다. 그런데 아무리 작업을 해도 점심시간은 너무나 더디 왔다.

하루가 이렇게 긴 시간이라는 것을 군대 이어 인생에서 두번째 느껴보는 것 같았다.

드디어 점심시간, 나도 눈치를 보며 일행을 따라 나갔다. 함바집에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아귀아귀 먹었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부랴부랴 현장에 와보니 사람들이 다들 스티로폼이나 합판 등을 깔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오후에는 어떤 일을 하게 될까? 하루가 정말 길고 길었다. 오후에는 주차장 층으로 가서 물을 퍼냈다. 전전날 내린 비에 주차장 층이 물바다였다. 역시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오전부터 흘린 땀으로 옷은 이미 젖어 있었고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도 다 젖어 있었다. 내 땀 냄새도 나를 무척 힘들게 하고 있었다.

4시30분이 되니 다들 슬슬 작업을 정리하고 작업 도구들을 챙겼다. 나도 눈치를 보며 도구들을 챙겼다. 처음 갔던 창고에 가 안전모를 반납하고 땀에 젖은 티셔츠와 수건을 가방에 넣고 여벌로 갈아입고 작업 확인증에 책임자의 사인을 받아 현장을 나왔다. 그야말로 퇴근을 한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인력사무소로 향했다. 허리는 끊어질 듯하고 다리도 뻐근하다. 확인증을 제출하니 소장이 그 자리에서 10만원을 건넸다. 나는 천원을 거슬러 주었다. 지하철역으로 다시 가며 돈 계산을 해보았다. 안전화 5만5천원, 택시비 4500원, 각반 2천원, 목장갑이 천원, 점심값이 5천원, 그래서 지출은 6만7500원, 오늘 일당은 9만9천원. 나는 오늘 나의 몸으로, 나의 노동으로 3만1500원을 벌었다. 내일은, 또 모레는 이미 투자한 인프라가 있으니 나의 수익은 더 늘 것이다. 매일 건설현장에 나가기엔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조금만 애를 쓰면 나의 어려운 한 시절을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골목에서 담배 한대를 피웠다. 하얀 담배 연기가 하필 눈에 들어가서 눈꼬리가 살짝 젖어버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하편입니다. 다음주에는 다른 수기가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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