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나를 가르친 어느 중국인 유학생 / 조문영

한겨레 2021. 1. 2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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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조문영 l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수업을 마무리하고 성적 평가를 마치고 나니 새해가 밝았다. 1년 내내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면서 학생들이 너무 힘들었다. 이미 닫혀가던 취업 문이 코로나로 굳게 잠긴 상태다 보니 에이(A) 학점을 받고도 서운함을 토로하는 학생한테 외려 연민이 든다. 외국인 유학생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캠퍼스에서 소외감을 느껴온 학생들은 언제 고향에 돌아갈지 막막한 상태에서 삼삼오오 자기들끼리 모여 기운을 북돋웠다.

혹독한 시절이지만, 선생은 여전히 학생한테 배우고, 깨닫고, 활력을 얻는다. 지난 1년간 국문학과 박사과정생 우자한을 만난 기쁨이 컸다. 대학원에서 중국 수업을 개설하면서, 적절한 교재를 찾지 못해 고육지책으로 영문 책 네 권을 통독했다. 책을 읽고 매주 한국어로 비평문을 써야 하는데, 중국 유학생 자한의 글은 다른 학생들이 봐도 감탄스러웠다. 인류학과 국문학, 교재에 등장한 20년 전의 중국 농촌과 제 전공인 1930년대 소설 속 식민지 조선, 자신이 기거하는 서울과 고향 베이징을 자유롭게 횡단하며 ‘국민’ 정체성에 속박되지 않는 글쓰기를 했다. 미국 유학 초창기에, 외국인이 한국을 주제로 발표할 때마다 검열하듯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던 나의 편협함과는 달랐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농민과 노동자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새롭게 접하면서, 그는 “중국이라는 공동체가 ‘버림’을 하면서 부상”해 온 역사와 용기 있게 대면했다. 이론 수업에서는 ‘전체’에 대한 환상을 일찌감치 버린 채 지구의 소멸 앞에 한없이 겸손해진 학문에 위로를 건넸다. “인류학은 대서사라는 ‘동굴’에서 빠져나와 불안과 혼돈의 상태에 처해 있다. 하지만 (…) 이 학문은 이론의 황혼에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자한은 중국어로 번역된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영어라는 언어에 매력을 못 느껴 구미 유학은 생각도 안 했고, 일본은 지진이 무서워 피했다며 멋쩍게 웃는다. 현재는 소설가 이상에 관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인데, 이후엔 인류학 과정도 밟겠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그는 미국 유학이 학계의 공인인증서가 된 관례를 일찌감치 거부했고, 종래의 관심사에 전문성을 덧입히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지도 않았다. 범속한 삶에서 기이함을 엿볼 줄 알았고, 지적인 호기심을 좇아 제 길을 텄다. 우리가 ‘중국’과 ‘중국인’을 얘기할 때 삭제한 지 오래인 ‘자유’라는 단어가, 무해한 표현을 고심하며 눈치를 보고 자기 검열을 하는 한국 학생보다 외려 그한테 더 잘 어울렸다.

현재 한국에서 중국을 논하는 작업은 버겁다. 시진핑 집권 이후 국가주의적 기획이 확실히 견고해지고, 코로나 사태 이후 중국 혐오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다 보니 중국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길을 잃었다”는 한탄이 새어나온다. 중국 언론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태를 두고 홍콩 시위의 폭력을 미화했던 미국의 업보라며 공세를 이어가고, 한국 언론은 이른바 ‘김치 공정’, ‘한복 공정’이라는 작명을 보태며 중국 일부 매체의 난장을 선전포고인 양 다룬다. 여기에 중국 정부 인사가 개입해 화를 돋우고, 1인 미디어가 바통을 이어받아 ‘애국’ 콘텐츠 돈벌이에 나선다. 대중은 동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국내 언론 보도처럼 중국 젊은이들이 애국주의에 환장인가? 작년에 인기를 끌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중국 네티즌들이 제국주의적 표현을 발견하고 분노했을 때, 자한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런 중대한 문제조차) 열정은 금방 사라진다. 그들이 이런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들은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입할 생각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

살면서 수많은 일을 겪는다. 기자의 조준에 따라 어떤 일은 사건이 되고 역사가 된다. 뉴스뿐 아니라 조사하고 글 쓰는 게 업인 나 같은 연구자도 어떤 일을 종국에는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미디어다. 어떤 국가든 생명의 존엄을 짓누르는 행보에 대해서는 비판을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로 교류 자체가 어려운 마당에 삶이 퍽퍽해진 사람들 사이에 불화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미디어가 움직이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김치 종주국의 인증샷을 찍느니, 나라는 미디어는 차라리 한국과 중국의 마주침을 통해 다른 열망을 생성해내는 움직임들을 사건으로 포착하고 역사로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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