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가습기살균제, '살인적 사용법'이 문제였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1. 1. 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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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게 지난 12일 무죄를 선고했다. 12일 무죄를 선고받은 홍 전 대표가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법원이 CMIT・MIT를 사용한 가습기살균제에 면죄부를 줘버렸다. 동물실험에서 CMIT・MIT가 천식・폐질환을 일으켰다는 명백한 증거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에 대해서는 선무당급인 법원이 10년 동안 온갖 푸대접에 시달린 피해자들의 가슴에 굵은 대못을 박아버렸다. 물론 참사의 본질을 외면해버린 환경부・질병관리청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피해자는 무시하고 어깨에 힘만 주다가 해체돼버린 사회적참사위원회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어설픈 권위만 앞세우면서 피해자를 절망시켰던 전문가들의 반성도 필요하다. 이제 기업에게 실질적인 책임을 묻는 새로운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사람은 쥐가 아니다

CMIT・MIT에 대한 무죄 판결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동물실험이었다. PHMG・PGH의 경우에는 2011년 쥐를 사용한 첫 동물실험에서부터 폐섬유증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환경부가 2017년에서야 마지못해 시작한 CMIT・MIT의 동물실험은 사정이 달랐다. 낮은 농도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비현실적일 정도로 높은 농도에서만 폐질환의 희미한 징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물실험의 해석에 익숙하지 않았던 재판부의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증거였을 것이다.

쥐를 비롯한 포유류를 이용한 생체분석(bioassay)은 화학물질의 인체 독성을 확인하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인체 유해성이 의심되는 독성물질을 이용한 인체실험은 윤리적인 이유로 더 이상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에는 쥐(래트)・마우스・기니피그・토끼・개・원숭이 등 다양한 동물이 활용된다. 심지어 제브라피쉬와 같은 어류도 사용된다.

그렇다고 동물실험이 만능일 수는 없다. 동물실험에서 확인되지 않는 증상이 인체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동물실험에 사용하는 동물과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진화적으로 다른 경로를 걸어왔고, 그래서 면역체계를 비롯한 생리구조가 매우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발생하는 질병을 연구하는 면역학(epidemeology)과 화학물질과 병인의 독성을 연구하는 독성학(toxicology)에서의 동물실험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어쨌든 사람이 ‘털이 난 긴 꼬리를 가진 쥐가 아니다’라는 사실은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특히 대부분의 쥐는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생활환경에서도 멀쩡하게 생존한다. 사람에게 흑사병이나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도 아무 증상을 나타내지 않는다.

환경부가 실시했던 동물실험은 강한 독성을 가진 물질에 의한 급성 독성을 확인하는 경우에나 적절한 것이었다. 저독성 물질의 경우에는 실험에 사용한 쥐가 2년 정도의 자연수명으로 사망할 때까지의 전주기적 관찰이 필요하다. 독성이 나타나는 메커니즘에 따라서 증상이 발현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른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습기살균제처럼 장기간에 걸쳐 연속적으로 낮은 농도의 독성물질에 노출시키는 경우에 동물실험은 사실 무용지물에 가까울 가능성이 매우 크다.

법원이 거부해버린 환경부의 임상분석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나열돼 있다. 연합뉴스 제공

검찰이 환경부가 마련해준 어설픈 동물실험만 믿었던 것은 최악의 패착이었다. 과학에 대한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취약한 재판부를 공략하기 위한 피고측 변호인과 전문가들의 ‘변설’이 절묘했다. 결국 재판부가 환경부의 ‘종합보고서’를 통째로 거부해버렸다. 환경부가 ‘비특이성’ 질환인 천식이 CMIT・MIT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분명하게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분자인 PHMG・PGH와 달리 ‘저분자’인 CMIT・MIT는 ‘대부분’ 호흡기의 윗부분인 상기도에서 흡수되어서 빠른 시간에 독성이 낮은 물질로 대사가 되어버린다는 교묘한 논리도 재판부에 놀라운 설득력을 발휘했다. 호흡으로 흡입한 CMIT・MIT의 ‘일부’가 하기도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형편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molecule)가 얼마나 작은 알갱이인지에 대한 화학적 진실은 설자리가 없다.

피해자의 연령・노출기간・혈액검사・폐기능에 대한 환경부의 임상분석은 누가 봐도 어설픈 것이었다. 건강보험공단의 질병코드만으로 피해사실을 입증해보겠다는 환경부의 시도는 과감한 것이었다. 피해자에 대한 정밀진단 자료가 있어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은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더욱이 어설픈 임상분석에 활용한 피해자의 절대 숫자도 실망스러울 정도로 적었다.

환경부가 천식 피해를 인정해준 155명 중에서 CMIT・MIT 사용자는 14명뿐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못했다. 그런데 2002년부터 판매된 제품 중 CMIT・MIT 제품은 1,992,272개로 PHMG・PGH 제품의 48%나 된다. 그렇다고 CMIT・MIT 제품이 PHMG・PGH 제품보다 독성이 약했을 것이라는 예단은 섣부른 것이다. 두 살균 성분은 화학적 특성이 매우 다르고, 그래서 인체에서 독성을 나타내는 메커니즘과 증상도 크게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상식이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당시 질병관리본부가 피해 증상을 ‘폐섬유증’으로 한정하고, CMIT・MIT 제품을 고집스럽게 배제시켰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부의 용역사업을 수행하면서, 피해자 인정 절차에 참여했던 전문가들도 범용 살균성분의 흡입에 의한 독성을 간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살균 물질의 인체 흡입 독성은 분자의 크기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상식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동물실험의 인체 적용이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힌 전문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화학혐오증을 자극해서 동물실험을 미래의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낯부끄러운 목소리가 더 컸다.

살인적 사용법이 참사의 원인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를 받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해당 선고 결과를 부정하며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무죄를 선고한 판결의 압권은 제조사의 ‘업무상 주의의무’에 대한 판단을 외면해버린 사실이었다. 판결문에는 제조사가 ‘제품의 포장지 등에 정확한 사용법에 대한 지시・설명을 하고, 이를 무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건강상 위해를 경고해야 한다’(판결문17쪽)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심지어 ‘가습기살균제를 가습기 내의 물에 희석하여 분무할 경우 소비자가 에어로졸 형태의 미세 물 입자에 녹아있는 화학물질을 흡입할 것이 당연히 예상되는 상황’(판결문 19쪽)이라고 분명하게 밝혀두기도 했다. 

그런데 재판부가 인용한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실제 안내문은 ‘가습기의 사용 과정에서 (세척제 또는 살균제) 화학물질이 공기 중으로 퍼지지 않도록 수돗물로 가습기의 물탱크를 여러 차례 헹궈야 한다.’이다. ‘철저히 씻어서 화학물질이 공기 중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판결문 20쪽)라는 재판부의 번역과는 상당한 온도 차이가 느껴지는 것이다. 실제로 EPA는 초음파 가습기에는 수돗물 대신 먹는 샘물을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결국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가습기의 물에 살균용 화학물질을 녹여 넣어 분무하는 방식으로 사용’(판결문 49쪽)하도록 요구한 제조사의 ‘살인적 사용법’이다. 가습기살균제의 정상적인 사용법은 미생물의 증식 등으로 오염된 가습기의 물탱크를 살균한 후에 미국 EPA의 권고에 따라 수돗물로 여러 차례 헹궈서 물탱크에 살균성분이 남아있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상식적인 ‘업무상 주의의무’를 무시해서 끔찍한 참사를 일으킨 제조사들에게 면죄부를 줘버린 재판부의 판결은 절망적으로 실망스러운 것이다. 사실은 세척력도 없고, 살균력도 없는 맹물에 가까운 엉터리 제품을 생산해놓고, 소비자들에게 ‘살인적 사용법’을 강요한 책임은 사법적 판단에서 절대 외면할 수 없는 핵심 사안이었다.

정작 중요한 문제의 핵심은 외면해버리고, 죄 없는 쥐만 희생시키는 무의미한 독성학 동물실험은 당장 포기해야만 한다. 이미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피해자에 대한 정밀 임상 진단을 통해서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 더욱이 가장 확실한 증거를 보여줄 수 있었던 중증 피해자들은 대부분 사망해버렸다. 생존한 피해자의 임상 진단도 기대하기 어렵다. 초기에 발생했었던 희미한 흔적은 모두 사라져버렸거나, 합병증상에 묻혀버렸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워진 흔적은 현대과학으로도 되살리기 어렵다.

살인적인 사용법을 요구한 엉터리 제품으로 참사를 일으킨 기업들도 피해자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피해자들에게 마땅한 보상을 해줘야만 한다. 비싼 변호사들의 요설을 이용해서 위기를 극복해보겠다는 얄팍한 술수는 자칫 기업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패착이 될 수도 있다. 일을 이 지경까지 망쳐놓은 환경부가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고, 환경부 관료들과 함께 피해자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전문가들도 대오각성해야 한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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