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에 쑥쑥 자라는 나비, 코로나 퇴치 묘약 줄까

한겨레 2021. 1. 2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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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이강운의 홀로세 곤충기][애니멀피플] 이강운의 홀로세 곤충기
영하 47도 견디는 붉은점모시나비, 항 바이러스 물질 탐색 필요
겨울이 시작되면 알에서 깨어나 맹추위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자라는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보호받는 한지성 나비이다.

새하얀 눈밭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고, 고요한 숲과 잘 어울려 멋진 그림을 연출한다. 2주 이상 계속되었던 영하 25~27도의 맹렬한 추위는 지나갔지만 아직 한파에 날 선 칼바람이 분다. 해가 바뀌어도 추위는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큰 추위가 온다는 대한(大寒).

때때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과 희끗희끗한 눈 속에서 녹색 보리가 눈을 녹이며 파릇파릇 싹을 내고 있다. 칙칙한 겨울과 맞지 않는 듯 이색적으로 보이지만 이미 작년 가을부터 추운 겨울을 버티며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자라고 있다.

눈 속에서 파릇파릇 싹을 낸 보리.

한겨울이 시작되는 11월 말부터 부화하기 시작해 겨울 한 복판에서 느긋하게 혹한을 즐기며 쑥쑥 자라는 놈들도 있다. 검은색 피부에 새까만 얼굴, 16개의 다리, 온 몸에 털이 복슬복슬한 10㎜ 안팎의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이야기다.

알에서 깨어나는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붉은점모시나비 1령 애벌레.
애벌레는 한겨울이지만 미세하게 자라는 기린초의 싹을 먹는다.

붉은점모시나비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과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1급 멸종위기종으로 보호 받고 있는 특별한 곤충이다. 희귀한 생물종일뿐 아니라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신약 개발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붉은점모시나비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화합물을 추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됐다.

추운 겨울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음에도 세포의 체액이 얼지 않도록 조절하여 영하 47도까지도 끄떡없이 활동하는 놈. 그들의 몸속에는 추위를 견디는 강인함이 생리적 특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나비 애벌레가 추운 겨울에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항할 어떤 생리활성 물질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붉은점모시나비의 내동결성을 다룬 2017년 ‘아시아 태평양 곤충학 저널’ 논문.

곤충은 고등 척추동물처럼 면역체계가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침입하는 균에 대항하는 항 세균성 단백질로 침입자를 죽인다. 붉은점모시나비는 겨울에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저온에 활발한 바이러스의 주 활동 시간과 겹쳐 있다. 늘 온갖 종류의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을 것이고, 살아남기 위해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성 물질을 보유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론해 본다.

붉은점모시나비가 추위에 얼마나 잘 견디는지 실험한 기록. 알은 영하 47도, 1령 애벌레는 영하 35도를 견딘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오늘로 꼭 1년이 됐다. 코로나19는 해를 넘겨 아직도 진행 중이고, 백신과 치료제가 나왔다 하나 계속적인 변이가 출현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기세등등한 코로나바이러스의 증식을 방해하는 화합물을 한지성 나비인 붉은점모시나비에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단백질 분해 효소를 이용하는 치료제들을 백신과 함께 병용해서 투여하면 바이러스를 다스릴 수 있는데, 약물 칵테일이라 부르는 이러한 접근방법은 HIV(AIDS 바이러스)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그러나 극한 추위를 견디는 강인한 붉은점모시나비에도 치명적 약점이 있다. 영하 50도의 혹한에 적응하도록 태어났지만 여름의 건조하고 무더운 날씨는 견디기 어려운 악조건이어서 알 속 애벌레 상태로 여름잠을 자며 견딘다.

2015년과 2016년 연구소에서는 열 충격 실험을 통해 45도에서 생존율이 20%로 뚝 떨어지는 결과를 확인했다. 더 뜨겁고 더 오래가는 폭염과 빈번한 가뭄을 발생시키는 기후변화가 붉은점모시나비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운 최악의 환경이 될 것이다.

알 속 애벌레 상태의 붉은점모시나비. 여름 동안 더위를 피해 알 속에서 여름잠을 잔다.
애벌레를 알 속에 그대로 두었을 때와 끄집어내 놓았을 때 온도에 따른 생존율 변화. 45도부터 심각한 열 충격을 받았음이 드러난다.

2011년부터 11년간 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붉은점모시나비 기후변화 실험에서는 개체군의 50%가 알에서 깨어나는 피크타임이 약 24일 당겨졌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결과인데, 전 세계 곤충의 70%가 사라진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기후변화는 숨 가쁘고 열 충격에 취약하니 붉은점모시나비가 배겨낼 재주가 없을 것이다.

지난해 6월 9일 충북 영동에서 연 붉은점모시나비 복원을 위한 방사 행사 모습.

붉은점모시나비는 단순히 아름다운 곤충,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해야 할 곤충으로서뿐 아니라 질병 치료의 또 다른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자원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서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데 연구도 해보기 전에 다 멸종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하느님은 늘 용서하고 사람은 가끔 용서하지만 자연은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자연은 노력한 딱 그만큼만 인간에게 돌려줄 것이다. 기후변화는 더는 과장도 아니고 점진적으로 개선하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다.

짙은 회색의 겨울에서 서서히 푸른빛으로 색을 바꾸는 좋은 때 둘째 손녀가 일주일 전 태어났다. 붉은점모시나비처럼 한겨울에 ‘바람의 아이’로 태어나 역경의 상황도 이겨 낼 강인함을 타고 났겠지만 기후변화로 더는 살 수 없는 세상이면 강인함도 소용없다. 미래의 아이들을 다 그레타 툰베리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아이들이 녹색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모든 생물이 다 같이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다 같이 살아야 더 좋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홀로세곤충방송국 힙(HIB)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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