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의 특급논설] 농어촌상생기금이 이익공유제 모델? No!

곽인찬 2021. 1. 2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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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이익공유제 선례로 언급  
당 대표 시절에 여야 합작품  
모금액 미달로 유명무실해져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터진 뒤  
기업은 기금 출연에 벌벌 떨어  
꼼수 안 통해..증세가 정공법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이익공유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그 선례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들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이익공유제가 연일 논란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운을 띄웠고, 문재인 대통령이 바람을 넣었다. 이 대표는 지난 11일 "코로나로 많은 이득을 얻는 계층이나 업종이 이익을 일부 사회에 기여해 피해가 큰 쪽을 돕는 다양한 방식을 우리 사회도 논의할 만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시대에 오히려 더 돈을 버는 기업들이 피해를 입는 대상들을 돕는 자발적인 운동이 일어나고, 그 운동에 대해 정부가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거들었다.

 
이때 문 대통령은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이야기를 꺼냈다. "(이익공유제의) 선례가 과거에 있었다"며 "한중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할 때 혜택을 보는 기업들과 공공부문이 함께 기금을 조성해 피해를 입는 농어촌 지역을 돕는 이른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운영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아뿔사,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이야기는 안 하는 게 나을 뻔했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유철 원내대표(왼쪽),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지난 2015년 11월 29일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한중FTA, 경제활성화 법안, 예산안 등 국회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뉴스1
상생기금 모금, 반쪽 아닌 4분의 1쪽

#장면1= 2015년 11월 국회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여야정협의체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조성에 합의했다.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유철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주도해서 만든 작품이다. 물론 그 뒤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있었다.

상생기금은 2017년부터 해마다 1000억원씩 모아서 한중 FTA로 피해를 보는 농어촌을 돕기로 했다. 10년 간 1조원 조성을 목표로 삼았다. 돈은 한중 FTA로 이득을 보는 민간기업, 공기업 등이 내기로 했다. 야당과 농어민단체는 좀더 센 구속력, 이를테면 조세 또는 부담금 부과를 원했다. 새누리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한중 FTA 비준안을 통과시키려면 야당에 줄 당근이 필요했다. 절충안으로 나온 게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초한 상생기금이다. 여야가 기금 조성에 합의한 날 한중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때도 밀실합의 논란이 불거졌다. 재계는 기금이 결국 준조세라며 반발했다. 그나마 강제 출연을 못박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결과는? 뻔하다. 지금 기금은 반쪽, 아니 4분의 1쪽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2017년 3월에 출범한 기금은 2020년 11월 기준 1151억원(협약 기준)이 모였다. 실제 출연 기준으로 하면 864억원이다. 당초 로드맵에 따르면 2017~2020년 4년 간 4000억원 모금이 목표다. 협약 기준으로는 목표액 대비 29% 수준이다. 출연 기준은 22%에도 못미친다. 기금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서 관리한다. 2017년에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이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모금 현황(자료=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웹사이트)

모금액 미달은 민간기업들의 호응이 저조한 게 원인이다. 모금액 대부분은 공공기관에서 나왔다. 이유는 두가지다. 애당초 기업들은 FTA 체결 부담을 왜 기업이 져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이런 판에 2016년 이른바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다. 기업인이 회삿돈을 잘못 쓰면 쇠고랑을 찬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재용 삼성 총수를 보라. 그는 여태껏 그 덫에 빠져 고초를 겪는 중이다. 이러니 앞으로도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잘 굴러갈 턱이 없다.
2018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FTA 이행에 따른 농어촌과 민간기업의 상생발전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농해수위 소속 의원들은 대기업 경영진에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을 촉구했다./사진=뉴스1

국회에서 벌어진 기묘한 일

#장면2= 2018년 11월 중순, 국회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모습이 펼쳐졌다. 이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15개사 대기업 간부들을 불러 간담회를 가졌다. 이름하여 'FTA 이행에 따른 농어촌과 민간기업의 상생발전을 위한 간담회' 자리였다. 삼성·현대차·SK·LG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사장, 부사장 등 고위직 간부들과 경제단체 관계자들이 농수산업을 관장하는 의원들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의원들의 닦달이 시작됐다. 한 의원은 "(기금 출연은) 여야와 기업이 사회 공감대 속에 했던 약속"이라고 상기시켰다. 또 다른 의원은 좀더 솔직하게 "정권이 바뀌어도 재판정에 세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기업인 중에 이 말을 곧이 믿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간담회에 참석한 관련 부서 장관들도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한다"며 분위기를 잡았다. 소용 없었다. 기업은 의원·장관보다 법이 더 무섭다. 함부로 기금에 출연하면 자칫 배임 갈고리에 걸릴 수도 있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을 인용, "대놓고 돈 내라고 위협한 건 권력형 앵벌이 수준"이라는 대목도 보인다.

그보다 한달전 국정감사장에서도 의원들은 삼성·현대차 등 5대 그룹 핵심 경영진을 불러 기금 출연을 독촉했다. 빚쟁이가 따로 없다.

차라리 국민의힘 정운천 의원이 현실적이다. 정 의원은 작년 7월 FTA 농어업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상생기금에 출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행법은 '상생기금은 정부 외의 자가 출연하는 현금이나 물품, 그 밖의 재산 등으로 조성한다'고 규정한다(18조의2). 짐을 나눠져야 할 정부가 이를 반길 리 없다. 국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앞서 2015년 12월 김무성 대표는 상생기금에 대해 "기업에는 준조세가 되고 나중에 기부금이 부족할 때에는 재정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딱 그대로 될 판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익공유제, 해법은 뭔가

문 대통령이 이익공유제의 '선례'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언급한 것은 부적절했다. 추정컨대 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에 겪은 일이라 기억에 오래 남은 것 같다. 하지만 기금의 현 모습을 제대로 알았다면 롤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반면교사 사례로 드는 게 맞다.

기업에서 돈을 걷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강제력을 동반한 세금이다. 법인세율을 올리든 코로나 특별세를 신설하든 국회가 법을 바꾸면 기업은 꼼짝없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하지만 증세는 조세저항을 부른다. 정치생명을 건 모험이다. 더구나 올 봄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잡혀 있다. 고육책으로 나온 게 이낙연표 코로나 상생기금이다. 그러나 농어촌상생기금에서 보듯 '자발적' 기금은 부실화의 저주를 피하기 어렵다.

문재인정부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틈날 때마다 외친다. 이낙연 대표도 작년 9월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코로나가 양극화를 더 키울 것"이라며 사회안전망 확충을 역설했다. 그렇지만 기업 팔을 비트는, 그것도 기업이 벌벌 떠는 기금 출연을 통해 코로나 약자를 돕는 방식은 비현실적인 데다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기업에 떠넘긴다는 인상도 준다. 설사 코로나 기금이 출범해도 정권 바뀌면 공중에 붕 뜨기 십상이다. 힘들어도 증세 정공법이 정답이다. 그럴 용기가 있다면 말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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