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아는 여성향 'BL의 세계'

2021. 1. 2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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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성 취향 콘텐츠 전문 플랫폼 '봄툰'의 윤지은 편집부장
[주간경향]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차마 대놓고 잘 알고 즐긴다고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게 반쯤은 음지에 걸친 하위문화 장르지만 그렇다고 불법 콘텐츠는 아니므로 떳떳하다. 철저하게 독자들의 머릿속 판타지에 맞춰 만들어진 남성 캐릭터들 사이의 사랑을 그리는 ‘보이즈 러브(BL·Boys’ Love)’라는 장르 얘기다. 특히 웹툰 분야에선 이 장르가 기본적으로 성인 여성 독자, 그중에서도 일부 마니아층을 겨냥하고 있음에도 시장 규모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보다 다양한 서사구조가 나타나고 개성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장르 내부에서 다양화가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때로는 BL 고유의 키워드가 대중적인 문화 콘텐츠에도 차용되고 있다. 여성 취향 콘텐츠 전문 플랫폼인 ‘봄툰’의 윤지은 편집부장(45)을 만나 이 장르만의 은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김태훈기자


-BL과 여성 대상 콘텐츠, 그리고 이들을 유통하는 플랫폼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봄툰은 여성이 좋아하는 웹콘텐츠를 만드는 곳이다. 애초에 봄툰은 처음부터 여성향 전문 플랫폼으로 만들어졌다. BL은 기원을 따지자면 순정만화의 하위·파생 장르였던 ‘야오이’에서 시작됐다. 플롯도 의미도 없다는 비하의 의미가 있는 용어인 야오이 대신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BL이라는 용어를 썼다. 1980년대부터 일본에서 서서히 마니아를 끌어모았고, 일본 만화와 소설을 통해 국내에서도 여성들이 주로 소비해 왔다. ‘보이즈’라고 해서 소년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저씨까지 넓게 포괄한다.”

-남성들은 대개 BL이 순정만화 캐릭터 같은 늘씬한 남성들의 동성애적 사랑을 다룬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데, 이들이 잘 모르는 더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면.

“처음 이 장르는 초기 순정만화의 문법을 따랐다. 예쁘게 생긴 남자와 여자의 연애에서 여자의 자리에 남자를 갖다 놓은 것뿐이었고, 처음에는 여성의 특징을 가진 남성이 진짜 남성과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금 ‘순정만화’라는 장르 자체가 정말 순정만 다루지 않는 것처럼 이 장르도 정착하면서 많은 취향과 변주를 낳았다. 현재는 실생활에 존재하는 남성들의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BL에서 만날 수 있다. 건장하거나 성격이 과격한 남성이 다른 남성의 연애 상대가 되는 이야기도 이성애 로맨스만큼이나 많다.”

-BL 작품 중 상당수가 이른바 ‘19금’ 성인 대상이어서 괜한 오해를 사기도 한다.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보고 싶은 만큼 여성도 아름다운 남성의 몸을 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는 아름다운 여성보다 아름다운 남성이 훨씬 귀하다.”

-BL의 작가와 독자층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간단히 말해 BL을 소비하던 소녀들이 커서 BL을 쓰고 그리고 계속 즐긴다. 2000년대 이전까지는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일본 대중문화에 익숙한 얼리어답터들이 많았다면, 현재는 글을 읽을 때부터 웹툰에 익숙하고 국산 콘텐츠를 즐긴 세대들이 만들고 즐긴다. 이 장르에 남성 작가나 독자층은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있고, 이 장르의 소비와 창작이 남성들에게 확대될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이 장르 안에서 그려지는 남성상은 현실 남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환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적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BL 장르 안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큰 흐름이나 유행은 어떻게 변해왔나.

“과거에는 큰 흐름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 같다. 여성으로 바꿔도 읽는 데에 지장이 없는 캐릭터라든지, ‘내가 남자를 좋아하다니!’ 하며 번민하다가 ‘난 남자가 아니라 너를 좋아해’라고 결론을 내리며 끝까지 동성애자임을 부정하는 캐릭터라든지. 지금의 유행은 ‘키워드’라고 하고 싶다. 정확하게 보고 싶은 외형이나 상황을 미리 작품 정보로 공개하고, 독자도 입맛에 맞춰서 골라 본다. 작가가 태우는 롤러코스터에 타기보다는 소비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미리 아는 상태로 소비하려 한다.”

BL 웹툰 ‘귀태’ 주인공들을 묘사한 일러스트 / ⓒ 펭귄. 봄툰 제공


-노골적인 성애 장면을 만화적으로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리고 흔히 말하는 ‘야동’처럼 남성 중심의 시각이 반영된 성애 장면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성애 장면을 위한 만화적 장치는 아주 많고 과거보다 더 다양해졌지만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기는…. 그리고 그런 장치가 없는 현재의 장면들도 전혀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BL의 남성들은 모두 신체적으로 탁월하고 성적 능력이 뛰어나며, 그렇게 열정적인 연인은 현실에 없을 정도다(웃음). 남성들이 원하는 앵글이나 표정이 대상인 여성을 철저하게 타자화하는 것과 달리 여성들은 성애 장면은 화끈하기를 바라면서도 당사자들이 느끼는 쾌락과 아름다운 육체의 묘사에 더 관심이 많다. 하지만 남성 간의 장면을 볼 때엔 남성향 작품과 비슷한 연출을 즐기기도 한다. 남성을 타자화한다고 할까.”

-BL을 단지 판타지나 픽션으로 보지 않고 내용 면에서 봤을 때 성소수자에 대한 몰이해가 깔려 있다고 비판할 여지도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가 나온다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이 장르의 주된 고객인 오래된 독자들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줄 안다. 무엇보다 BL에 나오는 그런 남자가 세상에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장르를 사랑한다. BL을 즐기는 독자들은 당연히 퀴어에 대한 편견이 적은 편이라 보지만, 혼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해도 그걸 겉으로 표현해서 실제 존재하는 개인에게 문제를 일으킬 확률은 낮다. 이 장르 자체가 아직은 음지에 있는 것이어서 이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자신이 이걸 즐긴다고 밝히기 때문이다.”

-BL을 좋아한다고 밝히기 어려운 분위기 때문에 마니아들이 더욱 이 장르에 애착을 가지는 것 같다.

“이쪽의 많은 작가는 드러내놓고 가족에게 자신의 작품을 밝히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특히 BL이 인기를 끄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여성들이 받은 성적인 억압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 실제 여성의 성이 불편한 현실에서 탈주하게 해주는 환상의 출구로서 BL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르의 애호자들은 대중문화에서 ‘코드’가 엿보이는 것은 매우 좋아하고 즐기지만, 막상 본격적인 BL이 대놓고 대중적인 장소나 매체에 드러나는 것은 불편해한다.”

-BL 시장이 확대되는 추세가 이어져 향후에는 주류문화에 편입하게 될까?

“현재는 시장에 반응해 공급이 커졌고 갈수록 이 장르 안에서 경쟁도 치열해져 취사선택이 극명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얼마나 커질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보는 중이지만 현재로선 ‘넓은 독자층’보다는 ‘깊은 독자층’이 이 장르의 문법이다. 콘텐츠를 공급하는 우리로서는 당연히 가랑비에 젖듯 이 장르에 입문하게 되고, 그 독자들이 깊이 빠지기를 기대하며 공략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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