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트럼프가 시작한 美中 무역전쟁, 확전이냐 종전이냐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2021. 1. 2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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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 무역 정책을 총괄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새로 들어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중국과 대화는 시간낭비일 뿐이니, 중국이 미·중 1단계 무역 합의를 지키도록 계속 압박하라." 미·중 무역 전쟁의 핵심 설계자로서 그가 건넨 마지막 조언은 "중국에 부과한 관세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4년 내내 중국을 때렸다. 안보·기술·외교·군사·인권·이데올로기 등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몰아쳤다. 시작은 중국을 향해 던진 관세 폭탄이었다. 2018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중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그해 7월 25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2019년 9월 12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수입품에 15% 관세를 매겼다. 이어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늘리지 않으면 2019년 12월 15일 중국산 제품 1560억 달러어치에도 1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12월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신화 연합뉴스

중국 시진핑 정부는 추가 관세 부과 직전 백기를 들었다. 중국은 2020~2021년 2년간 농산품을 포함해 미국산 제품·서비스를 2017년 수준 대비 2000억 달러어치 더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중국이 얻어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부과한 수입 관세 중 일부를 낮춰준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15일 류허 중국 부총리가 이끈 중국 대표단을 백악관으로 불러 미·중 1단계 무역 합의에 서명했다.

미·중 1단계 무역 합의가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1월 20일)을 앞에 두고 1년을 맞았다. 양측은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상황에서도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할 만큼 했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중국이 또 약속을 안 지킨다고 비난한다.

이제 모두 한 곳만 쳐다본다. 바이든 당선인은 전임자가 시작한 무역 전쟁을 과연 끝낼 것인가, 또는 ‘리셋’ 버튼을 누를 생각이라도 갖고 있을까.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 못지 않게 대중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국제 사회의 규칙을 무시하는 중국의 불공정한 행위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게 바이든 당선인의 기본 입장이다. 중국에선 트럼프 대통령 시절 추락한 양국 무역 관계가 터닝 포인트(전환점)를 맞았다고 기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양측이 공감대를 찾아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주요 20국) 정상회의에서 양자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바이든 우선순위에 중국은 없다

바이든 당선인은 선거운동 중이던 지난해 8월에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가 체결한 중국과의 1단계 무역 합의가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중국으로부터 받아낸 약속이란 게 모호한 데다, 뻔히 지키지도 않을 공허한 말일 뿐이란 것이다. 중국은 앞으로도 국유 기업에 보조금을 계속 주고 미국의 아이디어를 훔쳐갈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후인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선 중국과 관련해 당장 어떤 조치도 취하지는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관세도 당분간 그대로 두겠다고 했다. 일단 현상 유지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아시아·유럽의 오랜 동맹국들과 협의해 일관된 전략을 만들겠다고 했다. 미국 혼자서 결정하지 않고 연합전선을 구축해 중국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뜻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의 구상이 현실화되면 중국으로선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지기 때문에 그리 달갑지 않은 움직임이다.

중국과 미국 일각에선 바이든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직후 중국 대표단이 백악관을 방문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 측이 초기에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을 시도할 것이란 예상이다. 그러나 바이든호 출범 첫 10일 안에 하겠다고 밝힌 우선순위엔 중국이 없다. 중국 언론에선 미국 새 행정부가 어려운 일은 피하고 쉬운 것만 하려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2015년 9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 부부가 미국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를 공항에서 맞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미국에선 중국이 1단계 무역 합의 중 지난해 이행했어야 할 목표치를 채우지 않았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을 감안하더라도 중국이 벌써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불신이 팽배하다. 이 와중에 지난해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거둔 연간 무역 흑자는 오히려 전보다 늘어났다. 2020년 중국의 대미 수출은 4518억 달러로, 1년 전 대비 7.9% 늘었다. 이 기간 미국으로부터 수입은 1349억 달러로, 9.8% 증가했다. 2020년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3169억 달러로, 2019년 흑자 규모(2957억 달러)보다 커졌다.

중국과의 무역 합의를 비판하는 쪽에선 대중 관세 부과로 중국산 수입품 가격이 비싸지고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과 거래에서 손해만 보고 있다는 목소리도 큰 상황이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자의 정책을 무작정 되돌릴 순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012년 2월 14일 미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과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이 회동했다. /중국 신화사

◇ 바이든, 동맹 공조로 중국 손본다

중국의 못된 버릇을 손봐야 한다는 것은 바이든 당선인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단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낼지 방법면에선 스타일이 갈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인 데 반해, 바이든 당선인은 규칙을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면, 바이든 당선인은 동맹 공조를 중시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에 맞서 한국을 포함한 동맹과 협력해 다자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과 2차 후보 토론을 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같은 깡패와 어울리며 미국의 동맹을 멀어지게 했다고 비판했다. 친구 국가들과 함께 중국에 규칙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만약 중국이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도 했다. 단, 그가 말하는 이 규칙은 기존 국제 시스템 속에서 미국이 정하는 규칙이다.

이를 고려해 바이든 당선인은 중국과 새 무역 협상을 주도할 USTR 대표에 캐서린 타이를 지명했다. 대만계 미국인인 타이는 2007~2014년 USTR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제소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다고 한다.

2011년 8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이 중국 베이징의 한 식당을 방문해 중국식 식사를 했다. /트위터 캡처

최근 중국이 유럽연합(EU)과 7년간 끌어온 투자협정을 타결시킨 것은 바이든 행정부에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EU와 대중 공동 압박 전선을 구축하려던 바이든 당선인의 구상이 좌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30일 중국과 EU는 포괄적 투자협정(CAI)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유럽 기업과 투자자는 중국에서 보다 공정한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게 EU 지도부의 설명이다. 중국 입장에선 미국 정권 교체기에 미국의 핵심 동맹인 EU를 중국 쪽으로 끌어들이는 외교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제임스 맥브라이드 미 외교협회(CFR) 연구원은 "중국과 EU의 투자협정은 미국과 EU의 공조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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