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년이 던진 물음..공공의 역할은 무엇인가
[경향신문]
사라진 일상과 잊혀진 죽음
자영업자 영업제한에 피눈물
위기 속 공적 기능 확대돼야
지난해 1월20일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여성에게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그사이 확진자는 7만3115명으로, 사망자는 1283명으로 늘었다. 참혹한 숫자이지만 이것도 코로나19가 공동체와 개인의 삶에 끼친 심대한 영향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동료나 친구와 삼삼오오 모여 저녁자리를 갖는 소소한 행복은 유보되거나 축소됐다. 학교생활 1년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비대면 교육 1세대가 됐다. 예비부부는 결혼 날짜를 늦추고, 젊은 부부는 자녀계획을 미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부고와 함께 죽음마저 격리됐다. ‘비대면’이 정치·경제·사회의 전 분야에서 우리 삶을 규정했다.
코로나19는 전 지구적 위기이나, 모두가 같은 수준의 위기를 겪는 것은 아니다. 비대면 특수를 누리는 기업이 있지만 자영업자들은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렸다. 비대면 교육이 교육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직접고용 비정규직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노동자에게 피해가 집중됐다. 비정규직 10명 중 4명은 지난 1년 새 실업을 경험했다. 홈리스행동이 파악한 ‘쓸쓸한 죽음’은 지난해 서울에서만 295명으로 1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가 격차사회의 가속페달이 된 셈이다.
격차의 심화는 공동체의 통합을 깨뜨린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방역의 위기, 경제의 위기, 통합의 위기를 아우르는 3중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년간 우리 사회가 사투한 것은 이 같은 3중의 위기에 대한 응전이었고, 그 과정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이 화두로 떠올랐다. 공공부문의 재발견 내지 복원이라고 할 만하다.
공공부문의 주도적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준 건 방역이다. 마스크 대란을 해소하기 위해 공급한 ‘공적마스크’라는 명칭에 공공 방역의 인장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방역당국의 투명한 정보공개와 시민의 협조, 의료진의 헌신이 맞물려 K방역을 이끌었다. 시민의 삶을 구제해야 한다는 절대적 당위 앞에서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는 이념적 논쟁은 힘을 잃었고, 정부는 여야 합의를 거쳐 지금까지 세 차례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여권에서 ‘코로나19 이익공유제’가 공론화한 데도 공공부문의 적극적인 자원 재분배 기능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깔려 있다.
공공부문에 대한 시민 인식도 달라졌다. 공공부문이 자신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서울에서 요식업을 하는 신모씨(32)는 코로나19 확진자 밀접 접촉으로 자가격리 기간 2주를 지내며 국가와 공공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신씨는 19일 “자가격리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지원이 생각보다 많다”며 “보건 시스템이 마비됐다는 외국 소식을 접하면서 공공의 결정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이재광 전국자영업자연합회 공동의장은 “코로나19는 공공 결정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계기였다”며 “공공선을 위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한 만큼 피해구제를 위한 공적 영역의 전향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영업에 타격을 받은 헬스장·노래방·학원 등 업주들이 시위를 벌이며 영업 손실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 것은 공공부문에 개입하려는 적극적인 행위의 측면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위기가 일상화될 시대를 감당하기에 공공의 역할은 여전히 부족하다. 공공의료 인프라는 취약하고, 코로나19 피해계층에게 지급된 지원금으로는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기도 버겁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가 영향을 미치는 사회 전반에서 손발 기능을 할 공공의 역량이 중요해진 것”이라며 “위기상황에서 민간이 공적기능을 할 수 있도록 공공이 개입하는 데까지 기능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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