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입양의 이유

김민철 논설위원 2021. 1. 20.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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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13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 학대로 숨진 아동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박상훈 기자

중견 작가 이혜경의 단편 ‘피아간(彼我間)’은 주인공 경은이 주위에 불임 사실을 숨긴 채 입양 신청을 해놓고 임신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경은은 원래 주말에 장애아 시설에서 봉사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속물적 근성에 냉소적 시선을 보냈다. 그런데 막상 입양을 신청할 때 ‘험한 일 겪은 게 아니라, 서로 사랑해서 생겨난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자신도 주위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2년 전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장남 매덕스가 연세대에 입학한 것이 화제였다. 졸리는 전남편 브래드 피트와 사이에서 실로, 녹스, 비비안 등 세 자녀를 낳았지만 국적이 다른 3명의 자녀를 입양했다. 매덕스는 2000년 캄보디아, 팍스는 베트남, 자하라는 에티오피아에서 각각 입양한 아이들이다. 차인표·신애라 부부도 친아들이 있지만 딸 둘을 입양했다. 이 부부는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는 말로 입양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일러스트

▶최재형 감사원장도 아내와 사이에 두 딸이 있지만 2000년과 2006년 작은아들과 큰아들을 차례로 입양했다. 최 원장은 2011년 법률신문 인터뷰에서 “입양은 진열대에 있는 아이들을 물건 고르듯이 고르는 것이 아니다. 입양은 말 그대로 아이에게 사랑과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제공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몇 마디 말에 입양이 무엇인지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인이 사건’ 대책으로 “입양을 취소하거나 마음이 안 맞으면 입양 아동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가 무슨 반품하는 물건이냐” “정인이 사건의 본질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청와대는 대통령 머릿속에 아동 반품이란 의식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입양에 대해 모르거나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내 자식 키우는 것도 힘든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든다. 특히 장애아를 입양해 사랑으로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저런 사람들이 천사가 아닐까 싶다. 2019년 우리나라에서 입양된 장애아동은 163명이었다. 이 중 3분의 2가 넘는 112명은 해외로 입양됐다. 어려운 처지의 아동을 입양해 돌보겠다는 비율이 국내보다 해외가 더 높다고 한다. 입양은 누구도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결정이다. 이 천사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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