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성직자 덕목 꿰뚫어본 선각자 '성 암브로시우스'

조정진 2021. 1. 20.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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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성직자의 의무' 번역 출간
'참된 올바름' 최우선 자격으로 제시
염치·선의·관대함·우정 등도 강조
본인은 가난한 사람들에 전 재산 기부
제국·황실의 불의·횡포에 저항하기도
실리·유용성 앞세우는 현대 사회에 경종
기독교 윤리 교재·서양 목민심서로 불려
성 암브로시우스 초상화. 코로나19로 모든 종교가 존재와 역할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성 암브로시우스가 쓴 ‘성직자의 의무’가 번역돼 나왔다.
몇 년 전 장관후보자 청문회에서 야당이 송곳 검증을 하자 여당 원내대표가 “인사청문회는 성직자를 뽑는 자리가 아니다”고 말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흠결 없는 고결한 성직자상을 전제로 한 발언이다.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잊힐 만하면 주교·신부 등 성직자들의 아동 성학대가 폭로돼 교황이 사과하는 모습이 재연되고 있다. 원불교에선 5년 전 일반 교도에게 단기교육을 시켜 출가 성직자인 교무와 같은 활동을 하는 ‘기간제 성직자 제도’를 도입했다.
이렇듯 성직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나 사회적 편견의 범위는 다양해졌다. 성직자로는 승려·목사·신부 등이 있으며 교리를 해석하고 전달하며 신자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안식을 주는 상담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사회지도자로서의 역할도 한다. 사전적으로는 ‘종교 교단 내에서의 제례의 집행, 신도의 교육, 교단의 운영 등을 지도·담당하는 직업의 사람’으로 설명된다. 성직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고, 성직자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며, 성직자가 되면 어떤 의무가 있을까.
마침, 서방의 4대 교부(敎父)로 뽑히는 초기 밀라노교구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334∼397)가 집필한 성직자가 갖춰야 할 덕행과 사회적 책무를 일깨워주는 ‘성직자의 의무’(아카넷·사진)가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 있는 베르니니의 청동조각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베드로 사도좌를 떠받치고 있는 인물이 암브로시우스라는 사실은 그의 교회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변호사와 총독 고문을 거쳐 지방 집정관으로 일하던 암브로시우스는 주교 선출을 감독하러 밀라노 대성당에 들어갔다가 신도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세례 받은 지 7일 만에 주교품을 받은 신화적 인물이다.

성경 주해와 신학 저술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회윤리 작품을 남긴 암브로시우스는 주교 서품 이후 가진 재산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어 성직자의 사표가 됐다. 이뿐만 아니라 제국과 황실의 불의와 횡포에 저항하며 교회와 국가 관계에 균형추를 놓았고,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으로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했다. 그의 인품과 가르침은 방탕한 생활을 하던 이교도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대 로마 정치가 키케로(BC106∼43)가 아들을 위해 쓴 ‘의무론’을 뼈대로 삼은 책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연대에 뿌리내린 정의로운 삶, 공동선과 사회적 우정에 관한 신학적 해석 등 성직자가 지녀야 할 품성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키케로가 지혜로운 사람을 이상적 인간으로 내세웠다면, 암브로시우스는 참으로 지혜롭고 의로운 사람의 본보기를 성경에서 찾아 제시한다. 곧 하느님의 법에 뿌리내린 사랑의 윤리를 토대로 예지·절제·정의·용기 등 사추덕(四樞德)을 복음의 빛으로 해석했다.

기독교의 첫 윤리교과서이자 서양의 목민심서로 불리는 책은 성직자가 갖춰야 할 의무로서 염치와 절제, 선의와 관대함, 사랑과 우정, 침묵과 환대 등 덕행과 품행뿐 아니라 외모와 목소리, 외식과 가정 방문의 원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자신의 진중함과 담대함을 마비시키는 즐거움이라는 가면을 쓴 무절제한 이들과 거리를 두고, 외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는 식탐과 세속, 쾌락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의지를 넘어서는 술잔도 자제하라고 조언한다. 존경받는 노인들을 인생의 스승으로 삼고, 영광에 대한 욕망에 지나치게 끌려다니는 건방진 용기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책에서 암브로시우스가 강조하는 핵심 주제는 올바름과 이로움이다. 총 3권으로 구성된 책은 제1권 올바름, 제2권 이로움, 제3권 올바름과 이로움의 원칙에 대해 다뤘다. 그가 제시한 성직자의 의무는 궁극적으로 “올바른 것은 이롭지 않을 수 없다”는 가르침으로 마무리되다. 참된 올바름과 이로움을 추구할 때 올바름은 이로움이고, 이로움은 올바름이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우정에 관한 아름다운 성찰로 마무리된다.

암브로시우스는 성직자 양성을 위해 성직자가 갖춰야 할 품성과 덕행을 제시했지만 일반 신도들도 실천할 만한 덕목이 대부분이다. 성직자와 공직자를 아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이자 유럽 정신의 밑거름이 되었다.

비록 종교가 다르더라도 신앙인이라면 기꺼이 따라야 할 덕목인 셈이다. 올바름으로 통하는 이로움은 실리를 위해 명분을 버리고, 이익을 위해 정직을 내팽개치며, 도덕적 삶보다는 실용적 가치, 올바름보다는 유용성을 앞세우는 현대사회에서도 절실한 영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책을 번역한 교부학자 최원오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해제에서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고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랑의 질서에 따라 세상 명리에 초연하여 올바름을 추구하는 삶이야말로 동서양에서 공통으로 제시하는 인간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조정진 선임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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