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하나님의 헤세드를 해석하는 키(1)

입력 2021. 1. 2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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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에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인자와 자비, 그리고 자신의 백성과의 언약을 이행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헤세드는 희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해석하는 키를 알아야 한다.

이것을 믿는 자가 곧 하나님의 헤세드를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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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4장 1~22절


룻기에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인자와 자비, 그리고 자신의 백성과의 언약을 이행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헤세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헤세드는 희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통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있다. 그 어떤 고난도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가운데 있다. 그것이 우리 신자의 인생이다.

우리의 인생 속에 나타나는 그의 헤세드는 단편적이지 않다. 이것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해석하는 키를 알아야 한다. 이 키를 놓치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헤세드가 은혜인지 모르고 괴로워한다. 그 키는 무엇인가.

그것은 ‘때마침’이다. 룻기에서 주목해야 할 한 단어가 있다. 그것은 ‘마침’으로 번역된 ‘히네’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매우 우연으로 보이는 상황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어디에 나오는가. 그것은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갔을 때 ‘마침’ 보아스도 그 밭에 왔을 때 나온다.(2:4)

또한, 보아스가 나오미의 밭을 사서 되돌려 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고 성에 들어간다. 바로 그때 보아스가 반드시 만나야 하는 ‘아무개’가 보아스 앞을 지나간다.(4:1) 이 경우에도 히네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헤세드를 이해하는 데는 이 히네가 굉장히 중요하다. 무언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그때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다 우연이고, 운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 히네를 이해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이때를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히네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보아스는 이때를 만들기 위해 룻과 헤어지자 마자 바로 새벽같이 성안으로 들어간다.(3:15) 아무개가 언제 지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룻보다 먼저 성읍으로 간다. 이게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하나님은 헤세드를 베풀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분이 아니시다. 스스로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그때를 만들어 간다.

그렇기에 이 히네는 결코 시간의 의미가 아니다. 더 큰 그림인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그 사건에 집중해야 한다. 룻이 일할 때 보아스가 그 밭에 온 사건, 그 자체가 놀라운 히네이고, 보아스가 성문에 앉았을 때 그 아무개가 지나간 것 자체가 놀라운 히네이다. 그 사건의 여러 표현 가운데 하나가 시간적 묘사인 ‘때마침’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이 ‘때마침’을 시간으로 이해하기에 요나의 경우를 접목한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다. 그리고는 전혀 다른 곳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욥바로 간다. 그때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다. 그 배에 오른 요나는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진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분해야 할 때 잘 진행되는 일에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이다. 그것은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히네를 시간적 개념으로만 이해할 때에 생기는 단편적 해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요나가 바다에 빠져 물고기 배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극심한 공포와 절망의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그가 망했는가. 그것으로 그의 인생은 끝이 났는가. 그렇지 않다.

그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셨다. 결국에는 하나님은 요나를 물고기 배 속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요나에게 명령한 하나님의 사명을 완벽히 완성하게 하셨다. 이것이 히네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고통과 희락이 한 그림에 같이 있다. 우리의 고통과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히네가 있다. 이것을 믿는 자가 곧 하나님의 헤세드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수용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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