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좋아하는 역사가가 있나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막바지에 한국에 들어왔다. 대입 면접에서 사학과에 가겠다 답하니 면접관 한 분이 질문했다. “사학과? 가장 좋아하는 역사가 이름이 뭔가?” 하필 사학과 교수님이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당황했는데 머릿속에 두 개의 이름만 생각이 났다. “토마스와 울프슨입니다.” 뜻밖의 답이었는지 교수님이 살짝 당황하신 듯했고, 다행히 추가 질문 없이 면접이 끝났다.
토마스와 울프슨은 고등학교 때 19세기 유럽 역사 시간에 배운 교과서 저자들이다. 하필 그 이름이 머리에 박힌 건 선생님이 늘 저자 이름으로 책을 구분했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는 울프슨 가져와라. 오늘은 토마스 53페이지 읽고 에세이 써오고.” 이 수업엔 부교재도 서너 권 더 있었는데 모두 미묘하게 서술 관점이 달랐다. 특히 토마스와 울프슨은 같은 사건에 대해서 극과 극의 설명을 하는 책이어서 매주 번갈아 읽었다. 한 사건에 대해 기본 사항을 배운 뒤, 관점에 따라 얼마나 해석과 서술이 다르게 나올 수 있는지 교과서를 바꿔 읽곤 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유럽이 1차 세계대전에 다다르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페르디난드 대공이 암살당한 사건이 일어나고, 황제 후계자가 세르비아에서 저격되자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를 상대로 즉각 전쟁을 선포했다. 토마스는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전쟁을 선포한 것은 황제에 대한 직접적 도전을 무시할 수 없어 취한 어쩔 수 없는 대응이었다고 썼다. 반면 울프슨은 진작에 세르비아를 합병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호시탐탐 무력 행사를 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일어난 암살 사건을 핑계로 전쟁을 선포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두 책은 완전히 다른 사료를 참고하거나 인용했고, 중요한 인과관계로 꼽은 전후 사건들도 달랐다.
국정교과서가 논란이 됐을 때도, 아이들이 역사 관련 질문을 할 때도 이 수업이 생각났다. 여러 관점의 교과서를 비판적으로 읽고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 빈 시절의 선생님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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