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67] 이름을 훔치는 자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2021. 1. 2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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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주희의 유학에서 가장 큰 차이는 예(禮)를 보는 관점이다. 주희는 한사코 그것을 예법에 국한해 ‘주문공 가례’라는 책까지 썼지만 공자는 ‘예기(禮記)’에서 예란 일을 다스리는 것[治事]이라고 폭넓게 정의했다. 즉 단순한 예법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매사 일을 하면서 제대로 하는 것이 예(禮)라는 말이다.

그래서 일하거나 처신하면서 예에 맞으면[中禮] 군자이고, 일의 이치에 못 미치거나[不及] 지나치면[過] 예가 없어[無禮] 소인이나 간사한 자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일의 이치에 딱 들어맞을까? 그에 대한 답을 순자(荀子)가 주고 있다. 불구(不苟)가 그것이다. 그것은 ‘구차함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

‘불구’란 풀자면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최대한 하지 않는 태도다. 현실주의자 순자는 이렇게 말한다.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자들에게는 오만하게 굴고 가난하고 지위가 없는 자들에게는 나긋나긋하게 하려 애쓴다면 그것은 어진 사람의 마음이 아니다.”

가차 없는 위선(僞善) 비판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어째서 그러나? 순자의 답이다.

“간사한 자가 혼란한 세상에 거짓된 이름을 떨치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특히 가난하고 지위가 없는 자들에게 나긋나긋하게 하려 애쓰는 이유는 정말로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한다는 헛된 이름을 낚으려 함이다. 딴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게 옛날이야기로 그치지 않는 까닭은 실제 우리 정치권에는 ‘세월호 팔이’를 비롯해 각종 감성 팔이가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이름을 낚아 서울시장까지 됐으나 불미스러운 일로 세상을 떠난 한 인물 때문에 우리는 곧 새로운 시장을 뽑아야 한다.

이번에는 적어도 그런 사람은 걸러냈으면 한다. 왜냐하면 순자 말대로 “이름을 훔치는 것은 재물을 도둑질하는 것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이나 행동이 상식에서 벗어난다 싶으면 일단 의심의 눈길부터 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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