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47] 명태 자리를 꿰찬 고성 ‘도치’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입력 2021. 1. 20. 03:04 수정 2024. 3. 2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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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처럼 차가운 동해안 북쪽바다에 서식하는 ‘뚝지’는 생김새가 심퉁맞아 ‘심퉁이'라고도 하며, 고성사람들은 ‘도치'라 부른다. 도치를 갈무리해 김치와 갖은 양념을 넣고 볶은 두루치기.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녀석을 만난 게 언제일까.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만난 장소는 또렷하다. 새벽 거진항에서 중매인들 다리 사이에서 서럽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대게는 경매를 마쳤고, 아귀도 주인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 녀석은 아직도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발끝에 이리저리 밀려다녔다. 그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동해안 북쪽 바다에 서식하는 ‘뚝지’이다. 생김새가 심술궂어 ‘심퉁이'라고도 하며, 고성 사람들은 ‘도치'라 부른다. 여름에는 수심 500m 이상에서 있다가 11월부터 2월까지 수심 200m 내외의 연안으로 올라와 산란을 한다. 이때 그물을 놓아 잡는다.

옛날에는 동해 고성에서만 잡혔다. 당시 동해에서는 명태가 흔해서 도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만 고성 일대의 주민들만 김치를 넣고 한 솥 끓여 허기를 면하기 위해 먹었다. 지금은 고성뿐만 아니라 속초, 강릉, 동해, 삼척 등 강원도 겨울 대표 음식이다. 도치를 먹기 위해 일부러 겨울철 강원도 동해안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 거제와 부산의 겨울 별미가 대구라면 고성은 이제 명태 대신 도치다. 도치는 11월부터 3월까지 잡히지만 맛은 정월에 가장 좋다. 알이 밴 암컷은 수컷보다 곱절 이상 값을 받기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물에서 떼어 낼 때도 알이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두부 모양으로 찐 알이나 말린 도치를 쪄서 제사상에 올리기도 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동해안 북쪽바다에 서식하는 ‘뚝지’는 생김새가 심퉁맞아 ‘심퉁이'라고도 하며, 고성사람들은 ‘도치'라 부른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도치를 조리하려면 먼저 껍질의 점액질을 제거해야 한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잘 문질러 주면 된다. 그렇게 준비한 도치로 숙회, 탕, 두루치기<사진>, 무침까지 조리한다. 또 말려서 찜으로 조리하거나 보관하거나, 자식에게 보내기도 한다. 숙회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살짝 한 번 더 데친 후 찬물에 담갔다 물기를 제거하면 쫄깃한 식감이 배가된다. 탕은 신 김치를 넣고 알과 함께 살을 넣고 끓인다. 두루치기는 갈무리한 도치를 김치와 갖은 양념을 넣고 볶은 것이다. 도치는 늦어도 정월에 먹어야 좋다. 이 무렵 살이 꽉 차고 뼈도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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