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청년실업률 '미스매치'에 주목하라[동아 시론/이지홍]

2021. 1.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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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감수하며 좋은 직장 찾는 청년들
코로나로 대기업 선호 더 높아져
세금 투입한 선별처방 효과 의문
젊은 세대 눈높이 맞는 일자리 고민해야
이지홍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우려했던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와 경제 침체가 현실로 닥쳤다. 지난해 취업자 수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특히 20∼29세 연령층의 고용률이 전 연령층 가운데 가장 크게 하락했는데, 이 연령층의 실업률은 9%로 전체 실업률 4%의 두 배가 넘는다. 사실 청년실업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년실업률’은 이미 2014년에 9%대로 올라섰고, 다른 연령층과의 큰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는 낮은 편이지만 미국, 그리고 특히 일본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청년실업 문제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먼저 청년실업률이 왜 다른 연령층의 실업률보다 현격히 높은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높은 청년실업률의 여러 원인 중 하나를 구인-구직자 간 ‘미스매치(mismatch)’에서 찾을 수 있다. 모두 ‘좋은’ 일자리를 원하지만 그러한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이 때문에 구인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발생한다. 특히 첫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입장에서는 당분간 실업의 처지를 감수하고라도 원하는 직장을 찾을 때까지 구직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실제 우리는 안정된 삶을 얻고자 공무원 임용시험에 몇 년씩 도전하는 젊은이를 종종 목격한다.

청년실업이 큰 사회적 비용을 가져오는 본질적인 이유는 구직 기간이 너무 길다는 데 있다. 실업률은 20∼24세에 가장 높고, 25∼29세에서 일부 감소하나 30∼34세 연령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전체 실업률로 수렴한다. 즉, 취업이 가능하지만 보다 나은 조건을 찾는 구직자들이 청년세대에 특히 많고, 이들이 더 빨리 더 좋은 직장과 매치된다면 그만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적극적인 확대재정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실업문제 해결에도 감세 등 재정정책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청년실업처럼 미스매치에 상당 부분 기인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보편적 지원을 통한 소비와 노동수요 진작(振作) 효과는 제한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구인-구직자 간 미스매치에는 여러 기제들이 작동한다. 한국 경제에서 특히 중요한 미스매치의 한 원인은 악화 일로를 걷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균형 문제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데, 1998년 평균 66.6%였던 것이 2018년에는 53.1%까지 추락했다. 금번 코로나 사태로 격차는 더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청년들의 대기업 선호도는 더 높아지고 인재들이 외면하는 중소기업의 성과는 더 나빠지는 악순환의 형국이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도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지역 간 불균형에 기인한 노동시장의 미스매치다. 한국 청년들의 높은 수도권 선호 현상은 지난해 의사 파업에서도 드러났다. 파업의 발단은 지역 의대생 정원을 늘리고 이들이 해당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일하도록 강제하는 정부와 여당의 제안이었는데, 이 배경에 바로 비수도권 지역의 극심한 의료진 부족이 있었던 것이다. 수도권 취업을 원하는 건 의사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지역 청년에겐 구직도 수도권 진출도 매우 힘든 일이다. 지난해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청년실업률은 각각 10.6%, 11.6%, 10.1%까지 치솟아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대기업-중소기업, 그리고 수도권-비수도권 간 불균형 문제에 대한 균형 잡힌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실제 한국 정부는 규제, 세제 혜택, 정책금융, 공공기관 이전 등 대기업과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력을 완화하기 위한 온갖 정책을 가동했고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투입했다. 그 결과 단기적 측면에서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작 장기적 측면에서 과연 어떤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취지는 좋으나 잘못 설계된 정부 정책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 청년실업 문제의 한 원인일지도 모른다. 실적이 부진한 기업과 지역을 직접 겨냥한 선별적 처방만으로는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청년이 원하는 장소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수도권에도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야만 한다. 대기업에 차별적인 산업정책과 국민이 원하는 인력과 자본의 흐름을 막고 있는 국가균형발전 전략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볼 때다.

이지홍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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