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마인드]미국인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

이채린 뉴욕시민·자유기고가 2021. 1.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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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컬럼비아대 의사인 친구가 하소연을 했다. 병원 의료진에게 접종 의무인 독감 백신과는 달리, 코로나19 백신을 선택에 맡겼더니 접종률이 60%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매일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을 접하면서 어떻게 이토록 맞지 않을 수 있느냐며 한탄했다. 병원은 계속 독려할 예정이란다.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가 40만명에 달했지만 시민의 일상은 꽤나 태연히 돌아간다. 이쯤 되면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싶다.

이채린 뉴욕시민·자유기고가

미국에 오래 살수록 미국을 알면 알수록, 사람 사는 건 결국 다 비슷하다 깨닫는다. 그럼에도 뼛속까지 다르다 싶은 몇 가지가 있는데 죽음에 대한 태도, 즉 장례식이 그 하나다. 첫 장례식 참석은 충격이었다. 보통 3일간 조문을 받는 한국과는 달리, 한 시간 남짓의 장례식 시간에 맞춰 조문객들이 모두 모인다. 고인의 인생이 담긴 사진집이나 좋아하던 물품이 놓인 입구를 지나면, 잠든 듯 단장한 고인을 누인 열린 관이 보인다. 식이 시작되면 유족의 추모연설에 이어 친구나 가족들이 나서 고인과의 추억이나 일화를 나누며 장례식장을 웃음으로 채운다. 간간이 소리 없는 눈물도 스치지만 엄숙과 애통보다는 고인이 이 세상 삶을 잘 살아냈음을 ‘축하(celebrate)’하는 게 대부분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듯 음악이며 복장, 장소 등 자신의 장례식을 계획해두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처럼 가급적 죽음을 멀리하고자 하는 동양인들에겐 생경한 풍습이다.

내 슬픔을 타인에게 노출하는 것을 꺼리고 자신의 행복 추구가 삶의 중심인 개인주의에, 지금의 헤어짐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영원한 세계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기독교 사상이 더해져 만들어진 가치관일 테다. 태어남에서 시작돼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뒤돌아봄 없이 전진한 이생의 끝, 즉 인생의 한 부분으로 죽음을 상대적으로 담담히 받아들이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이제는 잊고 돌아서 내 삶에 집중해 충실하고 행복하게 살자는 그런 태도.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미국 신문 특유의 개인 스토리를 담은 부고기사란은 소위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다양한 고인들의 삶을 반추하고 기리는 사회 분위기를 보여준다. 예년에 비해 20% 증가했다는 정자은행의 수요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은 사회에서 새 삶을 만들어내고 내 행복을 추구하려는 의지의 증거다.

수요가 넘쳐 장례식장을 잡을 수 없거나 팬데믹으로 이동과 모임이 어려워지면서 온라인 장례식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부인의 장례식을 줌(ZOOM)으로 치른 은퇴 목사의 인터뷰가 실린 뉴욕타임스 기사에는 구체적인 방법을 단계별로 조언하는 등 많은 사람의 경험담이 댓글로 달렸다. 팬데믹이 아니어도 장례식에 가기 힘든 노인이나 외국에 거주하는 친구들은 쉽게 온라인 장례식을 통해 망자를 보낸다. 생전에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해놓고 고인의 애창곡을 부르는 친구를 스크린으로 보며 참석자들끼리 예상보다 훨씬 친밀하게 감정과 사랑과 웃음을 나누는 게 인상적이다. 상상할 수 없는 사망자 수와 극심한 정치적 혼란 속에 팬데믹 1년을 보낸 미국인들이 삶을 지탱해 나가는 데는 죽음을 대하는, 아니 삶을 대하는 태도에 그 이유가 있지 않나 싶다.

이채린 뉴욕시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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