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강의력 갑'이면 좋은 선생?
[경향신문]
‘단장취의’라는 말이 있다. 견강부회처럼 기존 글의 일부를 가져와 본래 문맥과 무관하거나 다르게 활용하는 일을 가리킨다. 보통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렇다고 단장취의 결과가 다 나쁜 건 아니다.
이맘때면 종종 접하는 ‘온고지신’이 그런 경우다. 흔히 이 말은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앎” 정도로 이해된다. 온고지신은 <논어>에 나오는 말로 “선생이 될 만하다”와 한 문장을 이루고 있다. 누구나 옛것과 새것을 골고루 익혀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선생이 되고자 하는 이라면 옛것과 새것 모두를 잘 알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나 누군가의 선생이 아니라고 하여 옛것과 새것을 두루 앎이 나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단장취의 했지만 그렇다고 잘못이라 책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짚을 대목이 있다. ‘고(故)’의 해석이 그것이다. 이 글자는 주로 ‘옛[古]’이라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온고지신이 고금에 대해 널리 앎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 이유다. 물론 온고지신 넉 자만 놓고 보면 이런 풀이도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이 말이 선생의 조건과 결부됐을 때다. 오늘날 문명 조건 아래서는 더욱 그러하다. 고금에 대한 박학다식이 선생의 제일 조건이라면 이제 인류는 인공지능을 최고의 선생으로 삼아야 할 때가 제법 되었기에 하는 얘기다.
공자의 시대, 고(故)는 사물의 본성을 온전히 드러내주는 사례를 뜻하기도 했다. 물이 흐른 자취를 보면 물의 본성을 알 수 있듯이 사례를 통해 사물의 본성을 알아낼 수 있다. 온고는 이렇듯 이미 실현된 사례를 토대로 사물의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활동이었다. 지신도 마찬가지다. 이미 파악한 바를 바탕으로 새것을 알아가는 활동, 곧 배우는 행위였다. 선생다운 선생이 되는 관건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잘 배울 줄 아는 것이라는 사유다. 좋은 선생의 자질은 강의력이 아닌 학습력이라는 통찰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참스승 관련 얘기다. “사람들의 병폐는 선생 노릇하기를 좋아하는 데 있다”는 2300여년 전 맹자의 일갈이 더욱 통렬해진 오늘날과는 동떨어진 얘기일 뿐이다. 차라리 선생 없는 세상이 어떨까. 도통 배울 줄도 모르면서 행세하는 이들도 없을 테니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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