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지구촌 3% 부자로 살아가는 법

박선화 한신대 교수 입력 2021. 1. 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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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어지럽다. 눈뜨면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주식·비트코인 열풍까지 세상이 온통 ‘돈’ 얘기다. 세계적인 투자자는 금과 달러를 사라 하고 어떤 이는 당분간 호황세를 장담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위기를 예언한다. 대개는 맞을 수도 있고 틀려도 그만인 이야기들로 전문가라기보다 역술인들 같은데 재미를 본 사람들은 신이 나서,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겁이 나서 모두들 달려든다. 나만 뒤처지는 건가 슬며시 걱정도 된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부자로 살아본 경험이 없다. 온갖 꽃과 식물, 새와 벌이 어우러진 정원이 있는 고택에서 놀던 유년의 기억이 내 인생에서 가장 부티 나는 시절이었다. 양친은 모두 몰락해가는 부잣집 장남, 장녀로 자존감과 교양은 있었지만 세상 사는 요령이 부족하고 과하게 고지식한 분들이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 비슷한 중산층의 생활에 비해 문화적 경험은 많았고, 물질적 혜택은 부족한 삶이었다. 최대의 위기는 엄마의 빚 보증으로 큰 타격을 받았을 때다. 갑작스레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터라 낙천성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 많은 것을 정리하고 몇 년간 극단의 긴축 생활을 했는데, 엄마는 그 시간을 10년 이상으로 기억하신다.

컬러풀한 세계 속에 나 홀로 흑백의 존재로 살아가는 듯한 상실감에서 벗어나게 한 뜻밖의 계기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게 된 ‘나의 세계 부자 순위’였다. 연봉이나 자산을 입력하면 지구인 70억명 중 어느 정도에 위치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인데, 믿기지 않는 결과에 몇 번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세계 3% 이내라고? 말이 돼?”

잠시 생각하니 말이 되고도 남았다. 당시 대한민국은 전 세계 250여개국 중 경제 순위 10위권에 근접하고 있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세계 4~5% 이내고 중산층이면 2~3% 이내다. 극소수의 슈퍼 리치들이 소유한 부의 지분율이나 후진국의 천문학적 부자 등 간단치 않은 고려사항들은 있지만, 마찬가지로 선진국의 중·하층이나 전 세계 초극빈층을 생각하면 틀린 계산도 아니다. 대한민국 평균 연봉은 저개발국가 국민의 50년 이상 소득에 가깝다.

나와 주변인만이 아닌 세계와 지구촌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삶에 큰 변곡점이 되었다. 절대 빈곤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수십억 인류가 굶주림과 열악하다는 표현으로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간다. 쉴 만한 안식처에 다이어트를 고민할 만큼 충분히 양질인 세 끼 식사를 하고, 읽고 싶은 책과 큰돈 들지 않는 문화생활, 가끔은 여행까지 즐기고 사는 삶이면 충분한 것 아닌가. 무엇이 더 필요해서 그리 안달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힘들면 수도권을 벗어나고, 더 힘들면 경제력이 우리보다 못한 나라로 가서 살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사이에 우리 경제는 더욱 발전해서 지금은 연봉 3000만원 정도면 세계 2% 이내라고도 한다.

물론 현실의 삶이 결코 간단한 수치로 환산될 수 없는 무한 변수의 집합체임을 알고 있다. 재력과 상관없이 이민이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준거집단에서의 상대적 박탈감은 인간에게 가장 큰 불행 요소다. 더 나은 삶의 욕망은 죄악이 아니다. 하지만 삶이 팍팍하고 빈곤하게 느껴질 때 가끔은 지구촌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조금은 낡고 소박한 보금자리와 평소 당연히 누리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비현실적 정신 승리 같은가. 아니, 그것이야말로 때로 비정한 인간 세계의 현실적 판단이다. 조급한 더 큰 부자의 기대야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판타지 아닌가. 그 환상이 부동산 거품을 만들고 벌어도 벌어도 채울 수 없는 허기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감사와 긍정심, 마음의 여유는 넓은 시야와 정확한 현실이해 능력,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일을 아는 진짜 부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자 선물이 아닐까.

박선화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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