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칼럼]트럼프의 유산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입력 2021. 1. 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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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월6일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건물 안팎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태를 두고 거의 매일 엄청난 양의 논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의 대부분은 사태의 발단은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가 이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그의 지지자를 선동한 데 있다고 본다. 13일 하원에서 통과된 그의 탄핵 사유도 내란 선동이었다.

이번 사태를 전하는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두 장면을 동시에 떠올렸다. 하나는 1981년 2월23일 새 총리를 선출하는 스페인의 국회의사당에 일단의 무장 경찰이 난입했던 장면이다. 1976년에 사망한 독재자 프랑코의 추종세력인 이들에 대한 군 통수권자인 후안 칼로스 1세의 단호한 거부로 사태는 수습되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무장경찰이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자리에 앉아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공산당 당수 산티아고 카릴리오의 모습이었다. 일생을 파시스트와 싸웠던 그이기에 그들의 위협 앞에서도 담담했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다른 하나는 비극적이었지만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1973년 9월11일 칠레에서 피노체트가 이끈 군사정변으로 대통령궁 ‘라 모네다’가 폭격당하고 반란군이 들이닥치는 상황에서 철모를 쓰고 기관단총을 들었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다.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는 미국은 이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으며 칠레 군부에 도움을 주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정변의 배후세력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었다.

대부분 군부가 의회를 강제해산하거나 집권자를 추방해서 정권을 잡는 수단인 정변은 성공한 때도 있지만 실패한 적도 많다. 주로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과 아시아 지역의 나라들에서 사회가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질 때 나타나는 정변을 염두에 둘 때 이번 워싱턴에서 벌어진 사태를 트럼프가 시도했던 정변의 실패로 보는 것은 문제가 많다. 상징이 현대정치의 많은 내용을 설명하는 오늘날, 미국 의회민주주의의 상징건물이 난입한 시위대에 의해 어이없이 점령당한 수치스러운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려는 평가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단지 트럼프의 불법적인 정치 행위에서 찾으려는 것은 근시안적인 접근이다. 트럼프가 임기를 며칠 남기지 않고 하원에서 탄핵당하고 불명예 속에서 백악관을 떠난다.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트럼프주의로 표현되는 정치적 이념과 7400만명이나 되는 그의 지지자들도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워싱턴 의사당서 벌어진 폭력 사태
분열된 미국 사회의 단면 보여줘
트럼프 떠나도 지지자는 안 떠나
바이든, 통합으로 위기 극복 나서도
트럼프의 ‘악령’이 계속 괴롭힐 것

4년 전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은 미국 정치에 있어서 비정상적인 상태라기보다는 미국적 포퓰리즘의 정상적인 표현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서민적인 대통령을 자처했던, 기성 정치엘리트 출신이 아니었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1767~1845)과 트럼프의 유사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20달러 지폐에 등장하는 초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잭슨 역시 하원에서 탄핵소추를 당한 경험이 있다.

전통적 보수주의와 엘리트 중심 신보수주의의 굳어진 지형을 흔들면서 등장한 트럼프는 그러나 감세, 재정 적자, 강한 군대, 사회 불평등 및 환경위험 감수 등 과거 레이건의 정책 노선을 따랐다. 코넬대학의 정치학 교수 피터 카첸스타인의 지적처럼 그의 정치적 신념은 국가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기독교 복음주의의 기둥 위에 서 있다. 비록 그는 일요일 교회를 찾기 전에 골프장을 먼저 들르지만 백악관에는 성경공부 그룹이 있을 정도다.

트럼프의 지지층 핵심은 1929년 대공황 이래 가장 심한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서 계층하락을 경험한 백인계의 중산층과 값싼 이민노동자와 경쟁해야만 하는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노동자들이다. 이번 의사당 난입에도 주로 이들이 앞장섰다. 이들이 만약 흑인이었다면 경찰이 어떤 조처를 했겠느냐는 반문이 나올 정도로 미국 인종주의의 현주소도 함께 보여준 사건이었다.

4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가 몰고 온 경제불황과 재정위기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조건에서 이번 사건은 새로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악재가 되었다. 국민통합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마당에 트럼프가 드리운 분열과 갈등의 불길한 악령은 앞으로도 그를 계속 괴롭힐 것이다.

이번 사태의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트럼프로 인해 그동안 골머리를 앓았던 독일과 프랑스는 우선 안도감을 표시한 데 반하여 그와 내내 대립각을 세웠던 중국, 러시아, 이란과 터키는 고소해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을 민주주의의 본보기라고 생각하면서 항상 남을 가르치려 드는 고약한 미국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3차에 걸친 북·미 정상회담까지 있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백악관을 떠나는 트럼프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인 평가는 아직 없다. 하지만 ‘강 대 강, 선 대 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대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미국을 특별한 나라라고 여긴다. 기회의 땅인 미국에 이민을 왔기에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불가능했던 삶을 누리면서 만족하거나 더 나아가 자신이나 차세대의 주류사회로의 진입에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아주 다르다는 생각은 꽤 오래 되었다. 유럽의 사회체제나 이념과는 다른 조건에서 성장한 미국을 1830년대에 둘러보고 남긴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였던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있다. 이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수직적인 신분질서에 얽매인 유럽과는 달리 평등이라는 수평적 사회적 관계가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이는 강점이지만 주위의 보이지 않는 대다수의 강압에 가담해서 ‘다수의 횡포’를 낳을 위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르다는 의미를 단순히 우열(優劣)의 의미로 이해하는 데 있다. 미국 보수주의 정치이념의 밑바탕에 흐르는 ‘미국 예외주의’가 바로 그러한 예다. 미국 보수적 정치사회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은 이런 기조가 미국이 반드시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은 아니라고 변호하지만 실제 정치 영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 예외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한마디로 미국의 영혼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보수주의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논법은 특히 9·11 사태 이후 자주 등장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던 트럼프의 포퓰리즘적 메시지도 역시 이 같은 맥락에 속한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국제정치에서 그는 비개입주의를 택했다. 미국의 비판적 지성 놈 촘스키나 하워드 진은 이를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건국 신화이자 성공 신화는 미국 보수주의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신념으로서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워싱턴의 의사당에서 벌어진 이번 폭력 사태가 보여준 미국의 ‘오프라인’ 정치풍경은 분명히 분열된 미국 사회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쟁점은 ‘온라인’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소셜미디어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자 트위터는 재빨리 트럼프가 폭력 선동 도구로 트위터를 이용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의 계정을 퇴출시켰다.

그러나 정부도 아닌 한 기업체가 플랫폼의 이용자가 올린 글의 내용은 물론 그의 행동양식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까지 내리면서 퇴장시키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명백하게 침해하는 행위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사회적 미디어의 세계에도 사업적인 경쟁 관계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서로 적대적인 플랫폼도 난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소셜미디어의 내용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이를 규제하는 권리를 기업에 맡기느냐, 아니면 정부에 맡기느냐는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 마련도 시급해졌다.

미국 정치에 있어서 트럼프의 파격적인 등장과 명예스럽지 못한 퇴장은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기대와 실망도 함께 부침했던 중요한 사건이었다. 바이든의 살벌한 취임식 분위기를 전하는 뉴스를 보면서 ‘트럼프보다는 낫겠지’ 하며 바이든에 거는 안이한 기대가 다시 실망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선 우리가 미국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먼저 자신을 뒤돌아보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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