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도 된다" 하지만 아이도 어른 걱정 다 안다

김중미 2021. 1. 20.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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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2020년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 기찻길옆작은학교(공부방)의 상징과도 같은 정기 공연이 무산됐다. 그 뒤로 어린이날 행사, 모내기, 여름 캠핑, 춘천아마추어인형극제 참가 같은 정기 행사들이 모두 취소됐다. 코로나19 확산이 잠시 주춤한 틈을 타 여름과 가을에 당일치기 소풍을 다녀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 해를 이렇게 보내고 마는 게 안타까웠던 이모 삼촌(공부방 교사)들은 조심스럽게 지난 12월 ‘랜선 발표회’를 계획했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중등부는 6개월 동안 틈틈이 영화를 찍고, 초등부는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 결과 발표회를 온라인으로 열기로 한 것이다.

발표회를 한다고 하자 아이들의 눈빛이 살아나고 가라앉았던 공부방 분위기가 들썩였다. 중계용 기기도 큰맘 먹고 샀다. 그런데 11월 말부터 코로나19가 다시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대응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랜선 발표회마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12월4일 무사히 행사를 치렀다. 작은학교 식구들은 난생처음 랜선 발표회를 하면서 새로운 소통 방법을 경험했다. 앞으로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용기도 얻었다. 그러나 서로 껴안으며 격려할 수 없고, 함께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랜선 발표회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만나 함께하는 것임을 깨닫는 자리가 되었다.

랜선 발표회가 끝나자마자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더 가팔라지면서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공부방을 다시 긴급돌봄 체계로 바꾸고 아이들 집으로 연락을 했다. 이모 삼촌들의 연락을 받은 보호자들은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가정마다 일이 줄었거나 임금이 밀렸고, 그 일자리마저 위태로웠다. 고립으로 힘든 게 아이들만은 아니었다. 이모 삼촌들은 아이들 집으로 자주 전화를 걸어 어른들의 이야기도 듣기로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성탄 잔치를 못하고, 강화공부방에서 하는 ‘함께 자기’도 할 수 없다는 말에 실망한 아이들은 공부방 이모와 글쓰기를 하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엄마랑 아빠가 걱정하는 거 다 아는데 엄마랑 아빠가 ‘너 할 거나 하라’고 한다. 하지만 나도 걱정된다. 아빠가 일한 거 돈 안 들어오는 거 다 알고 있는데 아빠는 몰라도 된다고 한다. 아빠는 코로나 때문에 일이 없는데 돈도 안 들어오고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엄마 아빠가 나 할 거나 잘 하라고 할 때 슬프다. 나도 걱정되는데 내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아 슬프다(초3 김민수, 가명).”

아이들은 코로나19로 따로 사는 엄마를 계속 못 봐서 우울하고, 아빠가 일 때문에 집을 비워 불안하다. 다시 시작된 비대면 수업은 여전히 귀찮고 어렵다. 몇몇 아이들은 학습꾸러미를 받으러 학교에 가야 하는 걸 잊거나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겨울이 되자 바깥 활동은 더 어려워지고, 돌봐줄 어른이 없는 집에서 하루 종일 있자니 무기력과 우울감만 커진다.

절망에 맞서는 길은 아이들 곁 지키는 일뿐

그러는 와중에 노동자들의 단식 소식이 들려왔다. 작은학교 아이들은 2년 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김용균’을 기억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1년 동안 모은 돼지저금통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농성장을 방문했을 것이다. 올해는 그럴 수 없어 카드와 영상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긴급돌봄 처지라 짧게 마음만 전하자고 했으나 아이들은 온 마음을 다해 응원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거기에 더해 이모 삼촌들은 성금을 모으고 영상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자신보다 더 슬프고 힘든 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고립과 단절의 아픔을 넘는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김용균’ ‘이한빛’의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코로나19는 미래를 더 비관하게 만든다. 그 절망에 맞서는 길은 여전히 아이들 곁을 지키는 일뿐이다.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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